군산에 가보고 싶었던 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 때문이었다. 영화 속 다림이 와 정원이가 살던 그 도시를 느껴보고 싶었다. 9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에게 교통단속반인 다림이 주차위반 필름 사진을 맡기며 가까워진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날로그 감성이 좋았다. 영화 속에서 계절별로 바뀌는 군산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영화가 자극적이지 않고 순수한 사랑이야기라 좋았다.
군산은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기에 꽤 성가신 곳이었다. 기차든 버스든 한 번에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차에 우리 지역에서 군산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생겼다는 플래카드를 봤다. 때 마침 기분전환이 하고 싶었고 오랜 친구에게 군산으로 떠나자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초겨울, 버스를 타고 5시간이 걸려 군산에 갔다.
영화에서 따뜻하고 감성적인 군산의 모습이 좋아 가보고 싶었는데 사실 그때 나의 상황은 내가 영화에서 느꼈던 감정과 반대로 우울하고 우중충 했다.
그 당시 하고 있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었고 청춘이라면 으레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마음에 드는 것 하나 없는 현재 상태가 뒤섞여 세상에 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을 때였다. 남들은 다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아직도 갈 길을 헤매고 있었다. 주변을 보면 모두들 일도 사랑도 쉽게 하는 것 같은데 세상이 나를 방해하는 것 마냥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까지 왔다. 여행 내내 비가 오거나 흐렸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기분이 다운된 상태에서 차갑게 내리는 비는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군산은 차갑고 축축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마음에 든 것도 있었다. 군산의 모습이 영화 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되지 않는 도시여서 그런지 골목길의 오래된 건물, 녹슬거나 글씨가 날아간 간판, 갈색 철 새시와 철문... 그런 거리의 풍경들이 90년대에서 그리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어떻게 보면 버려진 도시 같다고도 생각이 들었고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영화 속 ‘초원 사진관’은 관광객을 위해 보수 공사를 해놓았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영화 속 낡은 그 모습대로 두는 것이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때 하나 묻지 않은 새 시멘트 벽과 깨끗한 간판이 군산의 거리와 이질적이었다. 때론 바꾸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너무 아쉬웠다.
우산을 쓰고 초원사진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영화 속에서 정원과 다림 이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던 장면, 데이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림이 팔짱을 끼자 놀란 정원의 모습, 다림이 사진관에 돌을 던지던 장면을 떠올려 봤다. 사진관에 들어가니 습한 여름날 다림이 선풍기를 쐬며 늘어져 앉아 있으면 아이스크림 가져오던 따뜻한 정원의 모습이 선했다.
그리고 은파호수공원을 밤늦도록 걸었다. 친구와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배꼽을 잡기도 하고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희망찬 이야기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원망하며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시간이 아주 행복했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는 느낌은 아직도 확실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