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엔 할머니댁

by 최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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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나에게 여행이란 가족끼리 한 차를 타고 지도를 펼쳐보며 국내 구석구석을 다녔던 여행, 그리고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는 여행.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 때는 고속도로로 가도 5시간 씩 걸리던 때였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여름방학엔 종종 할머니 댁이나 외할머니댁으로 휴가 차 놀러를 갔었다.

도시 출신이 아닌 부모님 덕에 명절마다 교통체증에 힘겨웠었지만 낮이면 매미소리, 종달새 우는 소리 또 밤이면 귀뚜라미, 청개구리 소리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그리 도시화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황금빛의 신세계였다. 특히 외할머니댁은 전래동화 속 같았다. 어떠한 이유로 외할머니댁은 다른 이웃집과 많이 떨어져 있었고 집을 현대화시키는 것이 다른 집보다 늦었다. 창호지가 붙은 방문, 나무마루, 사랑방이 따로 있던 신기하고 우리만의 보물 같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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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온 식구가 감나무 아래 평상을 펼쳐놓고 점심을 먹을 때였는데 거기서 난 호박잎을 처음 보았다. 물론 호박잎을 수도 없이 많이 봐왔지만 증기에 익혀져 밥상에 올라온 건 처음 본 광경이었다. 뜨거운 호박잎에 밥 한 숟갈을 올리고 멸치젓을 얹어 처음 싸 먹었을 때의 그 맛!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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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댁에 대한 기억은 따뜻하고 좋은 기억이 많다. 마당에는 샘이라고 부르는 빨래를 하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여름에 뛰어놀고 들어오면 이모들이 찬물로 씻겨주시고 수건으로 감싼 다음 번쩍 들어 올려 평상에 올려다 주셨다. 여러 명의 아이들을 차례차례 씻어다 건져놓으면 옷을 새로 갈아입고 감나무 그늘 아래에서 백숙을 뜯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우리들을 번쩍번쩍 들어 올려 평상으로 옮겨다 주신 분들이 지금은 많이 늙으셨고 큰 병치레를 하느라 많이 야윈 분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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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이면 평상 주변에 초록색 모기향을 여기저기 피워놓고 엄마, 이모들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말았다.. 잠이 설들어 수다 떠는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곤 했었다.

사실 몰래 엿들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엄마와 이모들의 이야기를 안 듣는 척, 자는척하며 몰래 듣다 잠들곤 했었다. 그때 무릎을 베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왜 이리도 재미있었는지...

기억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 씨 가문의 뒷얘기들(?)이었다.

왠지 어린아이들이 들어서는 안될 것만 같은 이야기, 옛날 옛적 이야기라 그 장면들이 영화처럼 그려졌었는데..

이제는 갈 수 없는 머나먼 고향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갈 수 있어도 그곳은 이제 없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면서 인천 이모 댁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곳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외할아버지 제사 때나 명절에 한 번씩 들르면 온 마당에 잡초가 내 키만큼 자라 있었다.

지금은 삭아서 부서질 것 같은 공간이 되었지만 나에겐 여전히 황금빛 신세계로 남아있는 그곳이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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