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롱 Jul 30. 2021

스페인의 단짠 대표 선수, 추로스

추로스(Churros)의 모든 것


요즘 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는 단짠이다. 달고 짠 것을 먹으면 끊임없이 먹을 수 있어 등장한 단어. 단 것을 계속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고 짠 것도 마찬 가지나 그 둘의 조합은 엄청나다. 한국의 단짠을 떠올리면 양념 치킨과 떡볶이가 생각이 난다. 이들의 특징은 질리지 않는다는 것.


스페인에도 어김없이 단짠이 있다. 달콤한 멜론 위에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하몽을 얇게 썰어 올린 멜론꼰하몽(Melon con Jamon)이라든지, 대구 살을 두툼하게 썰어 마늘과 올리브유로 만든 필필 소스에 꿀을 쫘악 뿌려서 올려 구운 꿀 대구(Bacalao a la miel) 같은 것 말이다. 와인 안주부터 식사 메뉴, 디저트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이 중에 소개하고 싶은 스페인의 대표 단짠은 추로스. 가장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니 감히 대표라는 이름은 붙여봐도 될 것 같다.


디저트처럼 달콤할 것 같은 추로스가 왜 단짠일까? 처음 마드리드에서 추로스를 먹었을 때의 그 황당함을 잊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에서 조우한 추로스는 짰다! 추로스 하면 떠오르는 맛은 놀이동산에서 파는 길쭉한 계피 설탕이 가득 묻어 달달한 막대기인데, 이 곳에서 발견한 것은 맛도 모양도 달랐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끝이 붙은 알파벳 U 자 형 혹은 한 뼘 정도 길이의 얇고 짧은 막대기 형태. 물론 조금 더 두툼하고 길쭉한 형태로도 판다. 그것은 포라스 Porras라고 부르니 추로스는 아니라는 점. 이전부터 익히 알던 맛과 모양이 아니니 과연 내가 먹던 것이 진짜 추로스 일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갓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얘기처럼 자꾸만 손이 갔다. 설탕에 굴린 도너츠 같은 옛 추억을 뒤로 하고 진짜 짭짤이 츄로스는 봉지 과자를 먹듯 몇개나 더 해치울 수 있는 맛이었다. 가게 한켠에는 계피 설탕도 구비가 되어있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뿌려먹는 풍경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스페인 추로스에는 달콤 쌉싸름 걸쭉한 핫 초코를 빼놓을 수 없다. 보통 가게에서는 그 두 가지를 세트로 팔곤 하는데, 작은 추로스 4개 정도와 커피잔에 가득 담긴 꿀렁한 초콜릿 한잔이 함께 나온다. 같이 나오는 것이 달달한 탓에 단 음식으로 자리매김해버린 듯했다.


짭짤한 튀김과 초콜릿의 조화는 오늘 하루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종류는 다르지만 고기를 잔뜩 먹는 영국식 조식(English Breakfast) 만큼이나 오전 내내 속이 든든하다. 마드리드 대학생인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 말로는 추로스로 해장을 하기도 한단다. 밤새도록 놀고 난 후 아침을 먹고 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친구들끼리 12시에 만나 아침까지 논다고. 아침에 여는 스페인 카페와 식당 이곳저곳을 떠올려봐도 도저히 속을 달랠 메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메뉴가 추로스라는데! 아! 그래서 아침부터 추레리아(Churreria-추로스 파는 가게)가 그렇게 성업이구나! 추로스와 핫초코로 해장하는 그 기분은 어떤 걸까. 아직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참으로 특이한 메뉴다. 속이 불편한 순간까지 스페인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라니 그만큼 마성의 매력을 지녔음에 분명하다.


추로스의 기원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포르투갈이 전 세계를 항해할 때 명나라 시대 중국에 들렀다가 요우티야오 (Youtiao)라는 아침에 먹는 튀김빵을 보고 비법을 배워와 자연스럽게 스페인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요우티야오랑 추로스는 닮은 구석이 있다. 같이 마시는 게 두유와 핫초코로 나뉘는 것 말고는 말이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스페인 양치기들이 산에서 기름과 팬 하나로 추로스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고, 추로스라는 이름도 스페인 산악 지대에 사는 츄로(Churro-산양)의 뿔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명칭 때문인지 이것 또한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후 스페인이 남 아메리카에 진출하면서 추로스를 전파했고, 남 아메리카의 설탕과 초코가 들어오면서 단맛이 더해졌다는 이야기. 기원이 뭐건 간에 이 작은 음식에 달고 짠맛 그리고 역사가 담겨있다.


마드리드에도 유명 추레리아가 몇 군데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산히네스 San Gines. 마요르 광장 근처에 위치한 100년이 넘은 추레리아다. 1894년부터 운영했다니 역사가 엄청나게 긴 장소. 휴일도 없이 24시간 운영하니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바삭하고 씹으면 쫄깃하다 금방 부드러운 식감으로 변한다. 초콜릿 잔은 떠먹을 수 있게 스푼과 함께 주는데, 찍어 먹기만 하면 감질 나니 푹푹 떠먹는 것이 정석이다. 이것만 먹어도 큰 부담이 없을 정도의 단맛이라 어렵지 않게 한 컵을 다 마실 수 있다. 튀김 장인이 직접 튀기는 모습을 구경하기에는 추레리아 1902 (Churreria 1902)가 최고다. 1902년부터 5대째 이어 가업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스윽 스윽 기계로 반죽을 짜고 부지런히 추로스를 뒤집어 튀겨내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렇게 곧바로 튀겨진 것을 먹어야 맛있는데, 회전율이 어마어마하게 빠르다는 것도 장점. 배달도 되는지 밖에는 배달 기사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시기도 한다. 가족적인 분위기여서 조금 시키니까 더 먹어야 한다고 몇 개 덤으로 얹어주시기도 해서 스페인의 환대를 절로 느낄 수 있던 곳으로 기억한다.


마드리드 거주 4년 차인 우리 가족의 단골 추레리아는 '발로르(Valor)'이다. 발로르는 스페인에서 초콜릿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 1881년부터 초콜릿을 제조하기 시작했는데 이 가게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전문 제조사로 슈퍼에서도 초콜릿 제품을 쉽게 볼 수 있고, 발렌시아에는 초콜릿 박물관도 운영한다. 튀김이 느끼하지 않고 초콜릿 맛도 근사하다는 점, 무엇보다 테라스가 넓고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서 상쾌한 아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야외석 동그란 간이 테이블에 네 식구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건 스페인의 여유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인데 달달하고 짭짤한 맛을 왔다 갔다 하며 즐기다 보면 금새 한 세트가 없어진다. 아이들 성화에 못이기는 척 또 한 세트를 주문해 본다. 갓 나온 츄로스. 따끈한 네 개를 하나씩 나눠 후후 불어 먹는다. 역시 그거지 갓 나온게 최고. 향긋하고 달콤한 초콜렛으로 속을 따뜻하게 채웠으니 오늘 하루도 근사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티로 공원을 달리고 보니 배가 고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