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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n 24. 2021

레티로 공원을 달리고 보니 배가 고프다

마드리드 터줏대감 바 La Castela

종종 마드리드에 사는지 서울에 사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 현재 우리 집 주소는 마드리드지만 아파트가 잔뜩 있는 외곽에 살기 때문이리라.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오랜 세월을 자랑하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가게 대신 맥도널드와 슈퍼를 보며 살고 있으니 당연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주말에는 기를 쓰고 시내에 나간다. 진짜 유럽살이의 기분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랄까.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지만 소소한 일정으로 꽉 차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중심가로 가는 나들이는 꽤 근사하다. 특히 마드리드 시내는 옛것의 멋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마드리드 시에서 특별히 신경써서 관리하는 곳 중 하나가 레티로 공원. 정식 이름은 파르케 델 부엔 레티로(Parque del Buen Retiro)로 즐거운 휴양지라는 뜻을 지녔다. 16세기 펠리페 2세가 세운 동쪽 별궁의 정원. 왕이 만든 정원답게 규모가 아주 큰데, 350 에이커 그러니까 약 42만 평이나 되는 커다란 공원이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 있다. 크리스털 궁전과 작은 호수도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이 공간. 마드리드에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집에서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살게 된다면 매일 조깅을 할 거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상쾌한 공간이겠지! 상상만 해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


레티로 공원을 방문하고 허기진 순간 아무 곳이나 간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일상이 아닌 만큼 좋은 음식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법. 공원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마드리드의 전통 바 La Castela는 그런 면에서 안전한 선택지인데 1층은 바,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 이곳 또한 1986년에 열었으니 상당한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 그래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스텝 분들이 나이가 지긋해 보이신다. 보통 스페인 바에서는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다. 주문을 받는 것에도 계산서를 받고 계산하는 모든 그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이곳의 베테랑 서버님들은 눈빛만 봐도 후다닥 뭐든 처리해 주신다. 가끔 맛있냐고도 물어봐 주시고, 메뉴 추천도 해주시고. 중간에 메뉴를 바꿨는데도 걱정 말라며 소리를 힘껏 질러 처리해주시기도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바 인테리어지만, 아주 깨끗해서 애정을 가지고 살뜰하게 보살핌을 받는 곳이라는 게 절로 느껴지는 공간. 실내석 야외석 할 것 없이 쉴 새 없이 자리가 채워진다. 하지만 바쁘고 정신이 없는 분위기는 아니다. 일을 찾아서 하는 내공의 스텝 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셔서 그런가!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샹그리아를 닮은 탄산 와인에이드) 주문했다. 음료와 함께 나온 간단한 요깃거리가 놀랍게도 감자칩이나 올리브가 아닌 해산물 샐러드다. 지중해 각종 야채와 통통한 홍합살이 새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려 나왔다. 입맛을 절로 돋우는 한입에 이곳에 대한 기대가 절로 높아진다. 함께 방문한 사람은 비린 것을 전혀 입에도 대지 못하는 초등학생 입맛의 소유자. 그도 맛있다며 싹 비우는 것을 보니 이곳은 싱싱한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며 익숙하게 비린 맛을 잡을 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추천을 받아 우선 핀쵸(Pincho, 빵 한 조각에 요리를 얹어 파는 음식)를 세 가지 시켜봤다.


염장한 대구를 올린 바깔라 우(Bacalao) 핀쵸, 장조림처럼 소고기를 푹푹 익혀 만든 로보데토로(Robo de Toro) 핀쵸, 그리고 돼지 족발과 부속물로 만든 마니타스 (Manitas) 핀쵸. 간편히 먹는 핀쵸답게 후다닥 나왔다. 평소에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름에 선뜻시켜 보이 어려웠는데 이곳에서 조금씩 맛보게 되어 얼마나 신이 났는지! 회가 그리웠던 터라 신선한 느낌 가득한 바깔라우가 제일 맛있었고, 다른 두 가지는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어쩜 모든 음식에 비린 맛이 없다는 점. 이렇게만 끝내기 아쉬워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쌀 요리를 한 접시 더 시켰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오징어 문어 밥!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꼽으라면 육수를 넣고 밥을 철판에 얇게 한 빠에야일 텐데 사실 마드리드에서는 아로즈. 조금 더 촉촉하게 국밥에 가까운 쌀 요리를 더 많이 먹는다. 이곳의 쌀 요리는 마드리드 스타일. 리소토처럼 더 물기가 있는 편이다. 문어와 오징어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는 아로즈. 이 걸 먹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아로즈 전문점에 가면 1인분에 20유로가 넘는데, 심지어 2인분 이상시켜야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곳은 1인분에 12유로 대. 그런데 전문점 뺨치는 맛에 재료도 싱싱하고 다 먹고 생각나는 맛이다. 마지막 한 숟가락을 양보하기 어려울 만큼!

 

이곳은 해산물 구이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손님이 많았던 바쁜 날이어서 그랬는지 재료 수급이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가리비 구이와 맛 조개 구이 등 해산물은 다 떨어졌다고 했다. 먹어보고 싶은데 시킬 수가 없어 한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허기를 달래러 들어온 바에서 얼떨결에 한 근사한 식사. 5성 호텔은 아니지만 여유 있게 각 테이블을 돌봐주시는 아저씨들 덕에 인상 깊은 서비스를 받았다. 사람들 느끼는 게 다 비슷한가 보다. 나도 이곳이 참 좋았는데,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퀄리티 높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미슐랭의 빕 구르망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설명하기에도 딱 좋으니 친구들에게 꼭 말해줘야지. 레티로 공원 갔다가 여기 가라고. 진짜 마드리드 맛집이니 다른 것은 몰라도 아로즈 꼭꼭 먹어보라고.


근처 사시는 단골 노부부가 데이트 나온 풍경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한입 두입 벌써 다 먹고 없네?
야외석에 앉은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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