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방문을 앞두고 그리웠던 사람들을 곧 만날 생각에 기대감이 가득 차 오른다. 자연스럽게 잠시 드는 생각은 무슨 선물을 사 가면 좋아하려나. 선물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이 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품인지, 너무 크지 않아서 가져가기에 부담이 없는지, 작아도 정성이 담긴 선물을 사고 싶다. 거기에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무슨 선물을 살지 고민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미슐랭 레스토랑 디저트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마드리드의 전통 특산품 가게의 제비꽃 사탕을 오마쥬 해서 만든 후식을 내주는 원스타 레스토랑, 마드리드에 위치한 사탕가게라는 말에 눈이 절로 간다. 더 신기한 것은 후식을 먹기 전 헤드셋 기어로 1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준단다. 꽃핀 들판의 영상이라나. 미식 경험에서 여러 매체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기어로 동영상 보여주는 식당은 가본 적이 없어 인상 깊었다. 강렬한 장면은 전혀 없고 정말 말 그대로 꽃이 핀 들판만 보여준다는데 제비꽃을 보라는 걸까 혹은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느낌을 선사해주는 걸까. 이어 나오는 캔디 맛 유자 볼과 제비꽃 향이 나는 디저트. 마드리드에 위치한 라빠하리따(La Pajarita)라는 제과점의 사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문득 가게가 궁금해졌다.
오늘 바로 그 제과점에 들러보기로 한다. 초 여름을 맞이한 화창한 오후. 가게가 위치한 살라망카로 출발. 로고가 종이 접기로 만든 새 모양이기 때문에 라빠하리타(La Pajarita)라는 상호는 새에 관련된 이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나비넥타이라는 뜻이란다. 뭔가 귀여운 느낌이 나는 이름이다. 19세기부터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이 가게는 알고 보니 마드리드에서 제일 오래된 캔디샵. 1852년부터 시작해서 6대째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역사가 깊은 가게다. 이 가게는 아직까지도 하원, 상원, 마드리드 의회, 국무원, 사법부 총회 및 수많은 왕립 아카데미 및 전문 협회에 납품하고 있다. 유서 깊고 유명했던 만큼 아주 오래전에는 이런 콧대 높은 슬로건도 있었다고.
"여기서 사지 마세요. 우리 좀 비싸요. " (no compre aquí, somos muy caros)
사탕 하나가 얼마나 비쌀까 상상해보며 가게 문을 열었더니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이 나를 반겼다. 10평 남짓 되어 보이는 이 작은 가게의 벽면에는 각종 사탕과 아름다운 포장 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사탕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병이 멋졌고 사탕의 무게를 잴 때 썼을 법한 앤틱 저울도 있다. 비싸다는 슬로건은 왜 그만 쓰기로 했는지 알 것 같다. 작은 박스는 5유로 내외, 큰 박스는 10유로 내외로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다. 각각의 병에는 다른 색깔의 리본이 메어져 있는데 같은 리본으로 포장한 상자를 찾으면 해당 제품을 살 수 있다고 하니 작은 센스에도 예쁨이 묻어난다. 캐러멜과 초콜릿까지 세상에 달콤할 수 있는 것을 다 모아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달달해졌다.
시그니처 제품은 제비꽃 사탕. 제비꽃을 비올레따(Violeta)라고 하는데 손톱만 한 크기의 클로버를 얼핏 닮은 향기로운 들꽃이다. 제비꽃 모양을 닮은 보라색 캔디도 역시 같은 이름. 스페인 국왕이 즐겨 먹고 왕비님께 사랑을 전하는 아이템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마드리드의 특산물이다. 이 곳 근교에서 채집한 제비꽃 에센스로 만든 수제 캔디. 정말 꽃 향기가 나기에 은은한 단맛보다 향이 더 느껴져서 향기를 입에 머금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직관적으로 꽃이 연상되는 화려한 보라색 꽃 모양의 사탕. 흔하게 사랑받는 컬러는 아니지만 보라색은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꽃에 우주를 담은 것 같은 그런 색. 호화롭고 부유해 보이기도 하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여러 가지 과일 맛의 사탕과 캐러멜도 있고, 초콜릿과 핑크와 코발트블루 옷을 입은 아몬드도 있다. 초콜릿은 종이접기 새를 닮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하나하나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사탕 제품은 선물하기에 딱이다. 천연 재료로 만든 각종 맛 사탕. 하나하나 먹기 좋게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근사한 이탤릭 글씨로 적어둔 종이에 쌓여 있다. 먹는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 알 수 있게, 그리고 손에 묻지 않게 한입 대접하는 따뜻한 정성이 들어있다. 이거지. 바로 마음이 느껴지는 것. 선물의 기본을 충실하게 지켜준 느낌.
한국에서 만날 가족들을 생각하며 6박스를 샀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포장해주신다. 본래 사탕이 담겨 있는 박스도 예쁘지만, 포장지도, 리본도, 심지어 종이봉투까지 참하다. 특히 이 곳의 분위기를 엄마가 너무 좋아하실 것 같다. 샹들리에며 민트색 웨인스 코팅 인테리어며 사랑스럽고 달달한 한입 후식까지. 다음에 마드리드에 오시면 꼭 함께 방문하고 싶어 졌다. 오늘의 선물에는 나의 사심도 조금 넣었다. 제비꽃의 꽃말은 '나를 생각해주오', 멀리 있어 늘 죄송한 마음이지만, 나를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바람. 도착하면 와락 안아주실 엄마, 아빠를 기대하며 정성스레 포장된 핑크 상자를 조심스레 여행가방 안에 집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