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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n 28. 2022

베스트 프렌드와 이별하는 법

마드리드 동네 언니가 떠났다.

동네 언니를 알게 된 건 그러니까 2년 조금 더 전에 우리 앞집 브라질 이웃을 통해서 였다. 늘 에너지 넘치는 브라질리언. 근육질 몸매에 걸음이 엄청 빠른 은발에 가까운 앞집 아줌마. 세상 쿨할 것 같은 그녀 인데, 의외로 세심하고 자상하다. 나를 보면 늘 친구는 사귀었는지 물었다. 외로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먼 타지에 와있으니 사회 생활이 없을테고, 스페인어도 더듬더듬 못하는 것 같은데다 아기들도 어리니... 잘 지내고 있을까 걱정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마드리드 북쪽 외국인 엄마들의 단체 와츠앱에도 초대해주고 한번 차나 마시자고도 했다. 그렇게 따뜻한 인사를 건내곤 했지만 1분 1초를 쪼개쓰는 아들 둘 워킹 맘과 전업 주부로 지내는 나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었고, 늘 미안해 하는 그녀에게 나는 커피 안마셔도 괜찮다고 이렇게 지나가며 보는 것도 기쁘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 날은 오랜만에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할 말이 있었는데 오래 못하고 엄청 기다렸다는 듯 반가워했다. 본인에게 한국 고객이 생겼단다. 얼른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그랬다. 분명 그 한국 사람도 널 궁금해할거야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며. 전화번호와 이름을 달랑 받아들고는 벙쪄 있었는데, 그새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걸었다. 쉽사리 먼저 다가가는 것도 학생때 이야기지, 그 전화 한통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전화해서 무슨 말 하지? 생각부터 하면 실천에 못옮길 것 같아서 바로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 


"안녕하세요. 마드리드에 얼마전에 오셨다면서요. 저희 앞집 이웃 소개로 전화드렸어요. 와서 얼마 안되셨으면 이것 저것 궁금하실수도 있고..."


오지랍에 가까운 통화는 전후 사정을 몰랐던 나의 불찰에서 비롯된 것. 앞집 아줌마의 고객인 한국인 그분은 이미 다 집도 구하고,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고, 본인도 일하는 중이며 거의 정착한 상태였던 것. 처음 도착해서 패닉을 맞이 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던거다. 그렇게 얼떨떨한 통화를 끝내고, 진짜로 만나게 된 건 한참이나 뒤 이야기 였다.


다 커서 친구를 사귀기란 어렵다. 학교나 회사와는 다르다. 다름의 종류가 어찌나 다양한지 나이가 들며 더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사소하게는 먹는 것부터 입는 것 무엇이 옳고 그른가 생각하는 것. 나와 타인이 내리는 정의가 얼마나 상이한지 알게 되면 어느새 무서워지기 까지 한다. 나는 좋은 의도 였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사는데 바쁘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일종의 욕심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친해지고 지인 그러니까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닌 진짜 친구로 발전하기란 불가능까지는 아니어도 진짜진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언니 뭐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티키타카라고 하던가 주거니 받거니 즐겁게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도 술술 나온다. 그래서 신기했달까. 그렇게 가까워져서 어느새 시간을 서로 내서 만나기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 그게 어떤때는 여러 사정으로 두달에 한번이 되기도 했지만 앞뒤 걱정하지 않고 갑자기 커피 하자고 해도 될것 같은 그런 존재로 발전해버렸다.


그렇게 만나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친한 친구와 둘이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 일종의 여행 같은 거 랄까. 새 건물 가득해서 신도시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있다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고풍스러운 시내 한복판으로 놀러 나가는 느낌이랄까나. 아이 둘의 엄마임에는 변함 없지만,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 말이다. 이런걸 자유 부인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자유가 어찌나 달콤하고 소중하던지! 서로의 생일에 잊지 않고 카드를 쓰는 것. 취향 저격인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무엇보다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게다가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주는 것. 언니는 매일 매일 운동을 빠지지 않는다. 아이들 도시락도 챙겨주고 말이다. 스페인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 없는 시간 쪼개가며 사는 삶은 피곤함보다 활기가 넘쳐 보인다.


그래서 추억이 많다. 같이 미술관 산책을 한 것. 카페 투어를 해보는 것. 마드리드 맛집을 찾는 것.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동네 스타벅스에서 시원한 음료 한잔을 마신다. 막판에는 언니의 테니스 클래스에 끼기도 했다. 그렇게 정이 많이 많이 쌓였는데, 그녀의 파견 기간은 끝났고 커다란 아쉬움을 뒤로한채 귀국했다. 당연히 올날 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나이에 베스트 프렌드가 생길거란 기대는 전혀 안했는데 이렇게 잘 맞는 친구를 떠나 보내야하는 것이 슬펐다. 다른 감정보다도 마음에 찌릿찌릿하게 몰려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막판에는 더 특별하게, 마드리드 전문가 친구와 함께 타파스 투어를 즐기기도 했고 그녀가 가보고 싶어했던 리우 호텔의 루프탑에도 올라가봤다. 아이 둘 엄마 답게 그곳을 즐기는 시간은 새벽 2시가 아니라 오후 두시 였고, 모히토와 피냐 콜라다에는 알콜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마드리드는 근사했고 일분 일초가 소중했다. 


마지막일듯 말듯한 만남들 후 결국 마지막 외출 날. 우리는 처음 만났던 미국식 베이글 카페에서 가족들의 아침을 책임져줄 베이글을 샀다. 기념 사진도 찍고 말이다. 마드리드가 많이 변했다며 신식으로 멋지게 생긴 카페에도 들어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시나몬 롤이 있어 얼마나 반갑던지! 사이좋게 반을 나눠 먹기도 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잘 찾기 어려울 것 같은 페루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 동안의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으나 쉽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친한 친구 많이 없어도 한둘 있으면 든든한 법. 마드리드의 믿는 구석이었던 언니. 


결국 이별에 좋은 특별한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다시 다음 달에 꼭 만날 것 처럼 안녕을 고했다. 이렇게 친했는데, 학교에 가느라 공항에도 나가지 못한게 영 마음에 걸리고 말이다. 언젠가 또 마드리드에서 만날 것 같은 언니. 한국에서도 부디 잘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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