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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May 25. 2020

스페인에서 첫 산부인과 방문

여기서도 고위험 산모, 쌍둥이 엄마

스페인어를 못하니 여러모로 불편하다. 전화를 할 자신은 없고, 내 보험을 쓸 수 있는 근처 병원에 찾아가서 검사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무려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네? 한 달이요?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잠시 대기하고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맞다. 여긴 한국이 아니지? 배는 만삭 배처럼 엄청 크지만 나름 안정기에 접어든 터라 입덧도 사라졌고 잠도 잘 잤다. 임신 초기에는 태동이 없으니 영 불안해서 하이베베라는 태아 심음 측정기라는 것을 샀었는데 이게 뭐냐면 젤을 바르고 이 기계를 배에 갖다 대면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란성쌍둥이는 생긴 위치대로 아래가 첫째 위가 둘째인데 요리조리 잘 찾아보면 각각 아기의 심장소리를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엄청 신기하다. 두 아이의 심장 박동 속도도 다르다. 스페인에 올 때 이 기계를 가지고 왔다. 병원에 못가도 집에서 아이 심장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좁은 곳에서도 둘이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불안하지 않게 한 달을 기다릴 수 있었다.  


예약은 오래전에 잡았어도 처음으로 동네 병원에 진료 보러 다녀왔다. 작은 병원이지만 깨끗하고 다들 친절하다. 초음파 화질은 서울병원이 훨씬 선명하긴 하지만 아기들 둘 다 잘 있다고 하니 더할 것 없이 기쁘다. 잠시 까먹고 살고 있었는데 고위험 산모라고 바로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응급 상황이 와도 바로 그곳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보통 산모들은 끝까지 동네 병원에 다니다가 진통이 왔을 때 분만 병원에 가고 그날 담당 의사가 아이를 받는 다고 한다. 그럼 처음 본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받아주신다는 건데!!?? 아니 이런 불안한 일이 다 있나. 내 기준에서는 엄청 불안했다. 그런데 다들 그렇게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이번엔 한 달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차주에 바로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부디 영어 잘하시고 수술도 잘하시는 좋은 쌍둥이 전문 선생님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예약 시간에 맞춰 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하고 병원에 갔는데 그게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하고 오지 못한 임당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엄청나게 달달한 음료수를 원샷하라고 한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의외로 마실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시고 나서가 문제다. 속이 울렁울렁. 토할 것 같은 이 기분. 그렇지만 토하면 다시 해야 한다고 하니 무조건 참는 거다. 다 마신 후에 30분 넘게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데 폰으로 맛있는 한식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어쩜 다들 이렇게 사진도 잘 찍고 맛있는 조합을 찾아 잘 먹는지! 게다가 디저트도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임신성 당뇨가 있으면 식이제한을 해야 한다고 해서 꼭 한방에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집에서 쉬면서 지내다 한번 병원에 다녀왔더니 너무 피곤했다. 


공포의 임신 당뇨 검사 약


스페인에서 나는 무사히 아이들을 잘 낳을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도 오늘은 뭘 먹을까 일상의 고민으로 돌아왔다. 늘 배가 고팠다. 그래도 여기서 알게 된 주위 한국 분들이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냉장실에는 불고기와 잡채가 냉동실에는 꽝꽝 얼린 낙곱새 두팩이, 후식으로는 이탈리아 사람이 직접 만든다는 젤라또 한통까지 있어 든든했다. 임산부라고 챙겨주는 훈훈한 한국인의 정. 바쁘게 살면서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던 내 인생에서 요즘은 한텀 쉬어가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된다. 고마운 마음 꼭 잊지 말고 나도 은혜를 잘 갚으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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