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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Sep 17. 2020

포기하지마!

둥둥맘의 스페인어 공부

외국에 살면서 해당 국가 언어를 못할 때 가장 효과적인 변명은 바로 이거다.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래서 나는 스페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늘어간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스페인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떤 국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도 있다. 좋은 한국인으로 살면서 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는 것, 나아가서는 공동체에 피해를 안주는 것. 그중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인데 언어를 배우는 것이란 그 첫 발자국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언어를 못하면 내 주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게 우체부 아저씨 일수도 있고, 은행 직원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앞집 이웃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에는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편이다. 앞집은 스페인 + 브라질 커플, 윗집은 독일 + 스페인 커플, 윗윗 집은 스페인 + 미국 커플, 아랫집은 스페인 + 프랑스 커플. 눈에 띄는 건 우리 집처럼 외국인+ 외국인 조합은 없다는 것. 그래서 당연히 모두 스페인어는 기본. 우리만 약간 부족한 상태.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느리더라도 스페인어를 꾸준히 할 것이고 그 일엔 마음도 중요하지만 돈도 시간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핑계는 찾으려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결국 못하면 부끄러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다행히 쌍둥이 아기를 키우는 중에도 길은 있다.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혼자 스스로 듣기 어려웠는데, 온라인 스터디 그룹도 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덕분에 책임감이 발휘되어 진도 나가기 힘들던 문법 책도 두 권을 끝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질문도 한다. 선생님이 답해주신다. 같은 모국어를 써서 그런가 질문을 읽어보는 것도 그 답을 읽어보는 것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팀원 6명. 그리고 우리의 숙제를 기다리는 선생님. 어른이 되면 뭐든 스스로 척척 해낼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에겐 여전히 당근과 채찍이 필요했다. (대체 철은 언제 드는 것인가, 이제 나는 아이 둘의 엄마인데!)


지난주에는 스페인어 공인 자격시험을 봤다. DELE라는 자격증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최소로 필요한 것은 B2 정도의 레벨 (중상)인 것 같지만, 아직 조금 부족해서 B1을 봤다. 역시 그냥 공부하는 것과 목표를 잡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아이 자는 시간에 모의고사를 풀어보고 채점하고. 일주일에 한 번 쓰기 첨삭도 받고, 말하기 연습 과외도 하고 그러다 보니 준비 시간은 훌쩍 가버렸다. 그리고 시험을 봤다. 시험이라는 긴장감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시내 나들이에 설레기도 했다. 마드리드의 멋진 레티로 공원을 구경하며 시험장에 가고 시험 후에는 말하기 시험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테라스에서 풍경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시험을 무사히 쳤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물론 아직 하루에 두 번 낮잠을 자고 8시 50분에 취침하는 우리 둥둥이에게 가장 감사해야겠지만.


이곳에서 보낸 내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어쨌든 계속 스페인어를 조금씩 배워보려고 한다. 내년에는 B2도 보고 아기들이 어린이 집에 갈 때 즈음 선생님들이 나와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내 실력을 길러두어야겠다. 은행 볼일도 잘 보고, 스페인 친구들과 스페인어로 수다 떨며 커피도 마시고, 그들의 농담도 조금을 알아들어 같이 웃을 수 있도록.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꼭 해야 한다는 걸 이렇게 가끔, 스스로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포기는 안된다. 말할 상대가 없다면 녹음이라도 해서 연습해야지. 말하는 게 떨리면 중얼중얼 발표 준비라도 하면서 늘려보자. 젊은 시절의 헝그리 정신은 부족하더라도 약간의 책임감을 발휘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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