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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Sep 30. 2020

일주일에 두 번 나에게 주는 선물

30분의 자유와 그 행복에 대해

여전히 몸은 힘들고 고달프다. 돌이 안된 아이들의 수면 패턴은 들쭉 날쭉하고 아직 초보인 엄마는 늘 어수선하고 어설프다. 우유를 찾는 시간이 일정해지고 통잠을 잘 무렵 나는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매일 가야 하는 사설 어학원은 부담스러웠다. 마드리드 외곽에 사는지라 모든 학원이 다 멀어서 왔다 갔다 하는 데에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마드리드 시에서 운영하는 언어 센터가 있다고 한다. 수업료도 무료인 데다 일주일에 두 번. 다만 자리가 있는 반은 저 멀리 시내 중 시내. 우리 집에서는 상당히 멀었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 냅다 등록을 마쳤다.


학원 수업은 내가 따라가기에 조금 버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레벨 테스트에서 턱걸이 통과를 하고 듣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오디오에서 나오는 듣기는 무슨 말인지 영 어려웠고 선생님이 질문하면 내게 대답을 시킬까 싶어 고개를 숙이곤 했다. 잘 모르는 게 잘못도 아니지만 잘 모르겠다고는 하기 싫어서 꾸역꾸역 문제를 풀어봤고 초스피드로 폰에 있는 사전을 활용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곤 했다. 그래도 드디어 마드리드에, 스페인에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집이 주요 활동 무대인 아기 엄마는 이곳이 서울인지 마드리드 인지 알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배움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학원 근처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라테가 맛있는 카페, 사람이 늘 가득한 장소. 뭔가 이국적인 스페인 카페. 이름은 Toma cafe. Tomar이 마시다는 스페인 동사이고 변형을 고려했을 때 마셔 카페정도의 뜻인것 같다. 어쨌든 서울에서도 늘 카페 투어를 즐거워하던 나에게는 최고의 일탈 장소였다.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가면 늘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그곳에서 보내는 30분이 학원보다 더 기다려졌다.


단골 카페가 생긴 게 꽤나 기뻐서 혼자 홀짝홀짝 마시는 커피가 외롭지 않다. 간판도 너무 작아서 자세히 봐야 겨우 보이는 이곳에 손님들이 가득한 이유가 있었다. 디테일이 살아있까. 예를 들면, 로스트비프 샌드위치에 캐러멜 라이즈 한 양파가 곁들여져 있다. 거기까진 클래식해 보인다. 샌드위치를 무겁지 않게 하는 베이비 스피나치와 홈메이드 소스는 이 곳 만의 비법이고 게다가 코울슬로도 상당히 괜찮다. 케이크가 조금 푸석하긴 하지만 여긴 콜드 부르도 팔고.


나에게 이곳의 찾은 보물 같은 메뉴는 오픈 토스트였다. 구운 복숭아와 염소치즈를 곁들인 오픈 토스트. 꿀과 검정깨를 솔솔 뿌렸는데 살짝 태운 타임을 곁들여 내어 준 그 센스가 나를 감동시켰다. 맛도 있지만 코까지 즐겁다. 오히려 향이 더 중독적이었달까. 아보카도 토스토 다른 곳들과 달랐다. 으깬 아보카도에 고수와 석류를 올려주었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비주얼에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누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음식을 먹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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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년에 써두었던 글이다. 언제 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작은 카페에 방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원행은 결국 일주일에 두 번도 너무 부담이 되어 가기 어렵게 되었고, 또 연초부터 코로나가 시작되어 외출이 어렵지만 그래도 마드리드의 추억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 카페. 이국적인 풍경과 나의 자유로운 30분이 그립다. 아직도 무사히 열고 있을까. 망하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요즘. 코로나 타파는 나와 아기들만의 소원이 아니라 정말 모두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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