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끼를 외식하던 일상이 그립다. 심지어 회사 밥까지 생각난다. 뭘 먹을까 고르기만 하면 되고 사원증만 살짝 가져다 대면 식사 준비는 끝이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주는 회사. 아니 그렇게 일 시키고 싶나 흉볼 때는 언제고 이게 그립다니 사람 마음이란 참. 물론 회사를 다니며 회사에서 주는 밥만 먹은 건 아니다. 근처 맛집을 수소문해서 찾아가 보기도 하고 스트레스 해소랍시고 식사는 건너뛰고 유명한 카페에 1등으로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고 오기도 했으니까. 그런 일이 소소한 일탈처럼 느껴졌고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었다.
스페인에 와서는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가 내 몫이 되었다. 조금 바뀐 것이 있다면 하루는 세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 스페인의 식사는 공식적으로 다섯 끼다.
1. Desayuno (7:00-8:00AM) 커피나 티 한잔 혹은 토스트나 크루아상을 곁들여서 간단히
2. Almuerz (10:00-11:00AM) 커피, 우유와 가벼운 샌드위치. 이때 판콘 토마테나 또르티야데 파타타를 먹음
3. Comida (14:00-15:00PM) 우리가 생각하는 점심을 굉장히 늦게 먹는 편
4. Merienda (17:00-18:00PM) 약간의 탄수화물이나 당분 있는 과일 혹은 유제품을 간식으로 먹음
5. Cena (20:00-22:00PM) 저녁시간도 늦다. 점심과 저녁 시간에만 고기 생선 등 제대로 조리한 음식을 먹음
뭔가 하루 종일 먹다 끝나는 것 같은 스페인 식사. 다행히 우리는 갑자기 살아온 관습을 버리고 스페인식에 맞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에 다섯 끼는 준비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집 쌍둥이! 아이들이 자라려고 그러나 아침 간식 오후 간식은 필수. 매일 무엇을 해주나, 어떤 것을 잘 먹는가가 관건. 그래서 어른 밥, 아이 밥을 준비하다 보면 하루에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게다가 툭하면 통행금지가 일상이므로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결한다. (종종 시켜먹는 피자가 너무 고마울 따름) 이에 따라 나의 주부력, 장보기 실력도 점차 나아져 갔다는 건 설명할 것도 없다. 그래서 꼽아보는 스페인 슈퍼에서 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세요. 베스트 물품 5선!
1. 오렌지 주스 (Zumo de Naranja)
슈퍼 야채 섹션에 보면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는 오렌지 주서기. 주서기는 단순하다 기계 위에 위치한 통에 가득 담겨 있는 오렌지가 있다. 레버를 누르면 오렌지가 또르르 내려온다 반으로 갈리고 쭈욱 즙을 짜준다. 아주 푸짐하게 아낌없이 몇 개의 오렌지가 쪼개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통에 쪼르르 채워지는 오렌지 액체. 이쯤 되면 건강즙처럼 오렌지 즙이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 1리터의 즙은 보통 4유로 전후가 되겠다. 5천 원의 행복은 비타민씨 덩어리. 스페인은 오렌지 산지여서 아주 싱싱하고 달콤한 주스를 기대하셔도 좋겠다. 천연 오렌지인 만큼 나는 우리 집 아기들에게도 오렌지 주스를 준다. 엄청난 당도에 압도되지 말라고 물에 타 주긴 하지만, 역시나 예상한 대로 쥬! 쥬! 하며 더 달라고 한다.
2. 이베리코 돼지고기 (Cerdo Iberico)
스페인 장바구니 물가는 축복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종종 SNS에 장바구니 펼친 사진을 올리면 여지없이 코멘트가 달린다. 특히 고기 부분에서 물가가 아주 저렴하다고 느끼는데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고민 없이 집어 카트에 담는 행위에서 드러난다. 물론 멀리서 온 미국산 앵거스, 일본산 와규 등의 수입 고기는 비쌀 때도 있지만 그런 특수 제품을 사지 않고 로컬 고기만 사도 품질이 훌륭하고 맛이 좋다. 스페인에서는 기름기가 가득한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는 인기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종종 한우가 그립다. 그렇다고 기름진 고기를 안 먹냐? 아니다.
그럴 땐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먹는다. 이베리코 돼지고기는 흑돼지 품종 중 하나인데 일반적인 돼지와 다르게 풀과 도토리, 곡물 사료 등을 먹고 자란다. 특히 베요타 등급에 경우에는 자연 방목으로 자라며 야생 도토리를 먹고 자라서 특별한 식료품으로 취급한다.
기름기 가득한 Secreto라고 하는 항정살이나 담백한 맛의 Presa라고 하는 돼지 뒷목 부분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꼬들살이라고 하는데) 둘 다 슈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너무너무 맛있다.
3. 문어 (Pulpo)
문어는 특별식인 줄로만 알았다. 다리가 돌돌 말린 커다란 삶은 문어는 정말 잔치상에나 나오는 음식인 줄로 알았는데, 이곳은 문어가 아주 흔한 식재료다. 이곳의 문어 삶아내는 방식은 한국과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쫄깃한 맛이 강조되는 내 고향 문어와는 다르게 부들부들 한 점이 특징이다. 길쭉한 다리 모양을 살려 포장한 것도 있고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서 파는 것도 있다. 길쭉한 것은 구워서 불향이 나면 더 맛있는 것 같고 작은 조각은 그냥 따뜻하게 데워서 그냥 먹어도 좋고, 초고추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 궁합. 물론 이곳의 스타일대로 먹어도 된다. 삶은 감자 위에 조각 문어를 올리고 질 좋은 올리브유 휘휘 뿌리고 파프리카 가루와 굵은소금을 뿌려주면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 Pulpo a la gallega 북쪽 지방 갈리시아 스타일로 만든 문어가 된다. 대부분의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집에서 간단하고 푸짐하게 해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되겠다.
4. 틴토 데 베라노 (Tinto de Verano)
스페인의 바에서 흔히 파는 음료수로 레드 와인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다. 우리나라의 와인 에이드와 비슷하다. 샹그리아는 탄산이 없지만 틴토 데 베라노는 탄산 가득해서 특히 여름에 마시면 청량감이 엄청나다. 도수가 많이 높진 않지만 그래도 5% 정도는 된다. 이걸 제조해서 캔으로 판다. 여러 브랜드의 것이 있지만 주스로 유명한 Don Simon 사의 것을 추천한다. 가끔 바에서 먹어보면 이 브랜드의 제품을 쓰는 곳도 많이 있다.
5. 육가공품과 치즈 (Charcuteria y quesos al corte)
마트 안 정육 코너와 수산 코너 옆에 챠쿠테리아 라는 곳이 있다. 은행에 가서 하듯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면 전광판에 번호가 보인다. 진열대에 가득한 육가공품을 보고 손짓으로 고르면 곧바로 슬라이스 해서 내어준다. 살라미나, 초리조, 하몽 등을 조금씩 살 수도 있고 하몽보다 조금 더 담백한 로모도 살 수 있다. 커다란 한팩 사기엔 부담스러울 때 제격이다. 그리고 햄도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돼지, 칠면조, 닭 금방 골라 살 수 있다. 다만 햄은 사고 당일이나 다음날 먹어야 할 만큼 팩으로 사는 것에 비해 보관 기간이 짧다. 그렇지만 팩과는 맛이 다르다. 촉촉하고 결이 살아 있다. 햄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싶다. 빵에 버터만 다르고 햄만 올려도 풍미가 가득하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은 올리브유를 더 좋아하겠지만) 이 곳에서 가장 많이 사는 것은 다름 아닌 치즈! 그냥 즉석에서 잘라 파는 것일 뿐인데 포장 가공을 거쳐 플라스틱 통에 담겨 파는 것과 어찌나 맛이 다른지. 아이들은 이렇게 사는 고다 (Gouda) 치즈를 가장 좋아해서 매주 산다.
너무 먼 나라의 장바구니 추천 제품을 이곳에 올리나 싶다가도 올해는 작년보다 나을 것 같으니 한번 올려본다. 얼른 좋아져서 다시 관광객도 많아지고 도시에 활기가 돌면 좋겠다. 여행을 와도 한 끼쯤 집밥을 먹고 싶다면, 특히나 에어비앤비처럼 취사 가능한 곳에 가신다면 꼭 드셔 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메뉴.
마트 체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현지인 다운' 일정인 것 같다. 이곳의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내가 익숙한 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엿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랄까. 계산할 때에 현지인의 말투도 들어볼 수도 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게다가 저렴하지만 임팩트는 강한 기념 선물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스페인에 가신 다면 마트는 꼭 들러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