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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럽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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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Dec 22. 2020

락다운 5주 차에 그리운 것들

주말용 빵사오기, 외식하기, 쇼핑하기  

코로나를 락다운으로 막아 보려 하는 스페인 정부. 우리 동네는 벌써 5주 차다. 지금의 통행금지는 올해 초 상반기처럼 아예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던 것과는 달리, 동네 안 밖을 오갈 수 없어도 그 안에서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어떤 동네에서 확진자가 일정 수준 이상 발생하면 해당 동을 고립시켜 버리는 것. 물론 학교 가는 것과 회사 가는 곳은 제외. 동네 락다운에도 기준은 있다.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가 400명이 넘으면 락다운이 2주 시작되고 지난 14일 확진자 기준으로 400 이하가 되면 이동제한은 풀린다. 연장은 일주일씩인데. 연장 시기가 다가오면 시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진자 수를 확인해보곤 한다. 집에서 잘 나가지 못하던 몇 달을 거치고 나니 지금 정도의 수준은 별거 아니네 할 수도 있지만 2주씩, 1주씩 상황에 따라 연장이 되다 보니 희망 고문 같아서 더 괴롭다.


이런 순간에 가장 그리운 건 아마 일상이 아닐까. 반복되는 생활이 재미없다가도 잃으면 제일 생각나고 아쉬운 것. 우리 집에도 되찾고 싶은 보통의 삶이 있다.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제일 간절한 것은 토요일에 시내에서 빵을 사 오는 것. 스페인 바이브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신도시에서 구불구불한 골목과 고풍스러운 건물, 역사가 절로 느껴지는 풍경으로 떠나는 여행. 이쯤 되면 빵을 산다는 것은 핑계이고 진짜 스페인을 구경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벌써 커다란 트리가 세팅된 마요르 광장 지하에 차를 세우고 아기 둘과 함께 근처에 있는 Paul이라는 프렌치 베이커리에 들른다. 일주일 치는 아니어도 주말 먹을 빵을 양손 가득 산다. 벌써 부자가 된 기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리고 Paul에는 야외 좌석이 없어 건너편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겨 앉아 아이들은 물을 나와 신랑은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계절을 느껴보기도 한다.


날씨가 좋아서 바깥에 좀 더 있을만하면 조금 더 걸어가서 Valor이라는 츄레리아에 들른다. (츄레리아Churreria는 추로스를 파는 가게라는 뜻의 스페인어) 놀이동산에서 먹던 계피 설탕 가득한 추로스는 잠시 잊어도 된다. 스페인의 추로스는 달지 않고 훨씬 작게 여러 조각으로 나온다. 츄레리아에서는 쉴틈 없이 추로스를 커다란 기름통에 튀겨낸다. 다 튀겨서 동동 떠있는 추로스를 쇠꼬챙이로 하나 둘 셋 넷 얼른 건져 접시에 올려 가져다주는데, 우리 집 아기들은 여기서 신세계를 맛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크리미 한 핫초코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지만 아직은 초코를 먹기에 어린 나이. 조금 더 자라서 핫 초코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가족들과의 이런 나들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전엔 미쳐 알지 못했다.


가장 결정타는 바로 이것. 동네 밖으로 못 가는 답답함을 쇼핑을 쇼핑으로 풀 수도 없다. 길 건너 하나씩 자라 매장이 있다는 스페인이지만, 정말 길 건너 딱 하나 차이로 우리 동네에는 매장이 없다. 길 건너 북쪽에도 하나 있고, 길 건너 서쪽에도 하나가 있어 그 아쉬움은 증폭된다. 이 와중에 무엇을 그렇게 사고 싶었는가 하면 지금 나의 위시리스트 1번에는 테이블보가 올라가 있다. 연말 기분을 잔뜩 나게 해 줄 빨간색의 테이블보 말이다. 짙은 녹색이나 포인세티아가 그려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감을 한번 만져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마 이 것을 사는 것 또한 내년으로 살짝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유럽의 겨울은 어둡고 우울해서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지지대 삼아 살아간다. 아무리 코로나라고 하지만 가족들이 만나서 도란도란 못다 한 얘기를 하는 것, 외로운 이웃을 돌아보는 전통을 이 '나라'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12월 24일과 25일 딱 이틀간 모든 통행금지를 해제시켜준다고 한다. 특별 이벤트 이후에 확진자 수가 폭발 적으로 늘었던 만큼. 정말 딱 취지에 맞는 정도만 조심조심 만나 주었으면. 그래서 다음 주에는 우리 동네 밖으로도 자유롭게 나갈 수 있고, 봄이 왔을 때 우리 아기들이 마스크 없이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운 것들을 되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누군가 확신을 가지고 말해주었으면 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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