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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럽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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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Dec 18. 2020

크리스마스니까 파네토네

따뜻한 연말을 위한 최고의 선물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시내는 한참 겨울 단장 중이다. 알록달록 예쁜 빛깔을 내는 조명,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하나씩 채워져 간다. 비록 2020년의 불청객 덕에 모든 행사는 취소가 되었지만 지나가는 길에 차 안에서 올려다보는 반짝임도 올해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대 명절인 설날, 추석 같은 존재다. 물론 스페인도 마찬가지.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늘 그렇게 살아온 일상 같은 것. 최근에는 도시 간 이동을 제한해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 시간 보지 못했고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무조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막아놨던 길을 열어준다고 한다.


해외 살이를 하는 이방인에게 크리스마스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소소하게 달콤한 디저트를 포장해서 감사의 인사를 할 수도 있고. 트리 앞에 같이 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한해 가는 아쉬움을 함께 위로할 수도 있다. 올해를 돌아보니 내가 가장 신세를 많이 진 사람은 우리 아래층에 사는 이웃 프랑스 언니. 종종 마시는 커피와 여전히 꿈을 고민하는 어른의 대화가 어찌나 힐링이 되던지 쌍둥이 육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우울해지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 이런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작게나마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선물이 소박할지언정 아무거라 줄 순 없지.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중 스페인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시는 요리사님께 파네토네 맛집 리스트를 전달받았다. 스페인에서 유명하다는 장인의 파네토네(Artisan panettone)라니! 마음에 쏙 들어.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케이크지만 빵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천연 효모로 오랜 시간 발효를 하고 그 안에는 부를 상징하는 건포도와 당절임 한 과일 등을 넣어 만드는 빵. 봉긋하게 돔형이라 예쁘기도 하고. 노른자와 설탕의 황금 비율로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덕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니 선물로도 딱이다. 지금 살고 있는 마드리드 북부 우리 동네는 4주째 락다운이어서 어디에 나갈 수 없으니 택배로 받을 수 있는 파네토네로 골라본다.


눈 빠지게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한 날,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강렬한 빨간색에 금색 장식. '나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라고 스스로 뽐내는 파네토네 두 상자. 요청한 대로 선물용 봉투와 카드까지 예쁘게 도착했다. 얼른 주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언니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내본다. 아쉽게 아이들 픽업 시간과 겹쳤지만 집에 돌아오면 바로 알려 준다고 했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나 도착~"

"1분 만에 내려갈게!"


후다닥 내려갔다. 얼른 들어오라며 티와 쿠키도 내어준다. 언니를 쏙 빼닮은 두 딸도 함께 반겨준다. 아끼는 인형들도 소개해주고 오늘 학교에서 한 액티비티도 보여주고. 같은 아이 둘인 집이지만 언니네는 정말 예쁘게 해 두고 산다. 특별한 공간에 들어선 느낌.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하나 그것은 생나무 크리스마스트리. 나에겐 로망이었는데 이곳에선 이미 라이프 스타일. 덕분에 나까지 눈호강을 한다. 아차 얼른 내려온 이유를 말해줘야지. 언니에게 빠네토네를 건넸다. 고마운 마음은 카드에 살짝 적어두었으니 간단한 선물이지만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가득 담아서.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에는 금새 미소가 가득 찼다. 유명하다는 이 제과점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도착한 선물에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했다. 이쯤 되면 나의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는 성공이다! 언니네 크리스마스트리 앞 소파에 앉아 따뜻한 티를 마셨다. 꽁꽁 언다는 표현이 어색한 태양의 나라 수도인 마드리드지만 지금만큼은 이곳이 훈훈해서 '꽁꽁 언 마음도 사르르 녹는다.'는 한 줄이 절로 떠올랐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기분 좋았던 오늘.


인테리어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프랑스 언니네 크리스마스트리, 진짜 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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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음식이 늘 궁금하니 언니 것만 샀을 리 없다. 유럽의 크리스마스 빵 중 가장 궁금했던 파네토네인 만큼 우리 집 것도 함께 주문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커다란 빵을 아기들과 함께 열면 좋았겠지만 신랑과 나는 그새를 못 참고 아기들이 자는 느지막한 밤에 케이크 상자를 열어버렸다. 향긋하다. 달콤하지만 약간의 산미가 느껴지는 시트러스 과일의 존재감과 빵 특유의 고소함이 은은하게 감돈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면 아기들이 깬다. 조용히 살살 그리고 무사히 꺼냈을 때 그 희열이란!


이곳의 빵을 소개해주신 요리사 분이 그러셨다. 큼직하게 한 덩이 썰고, 결대로 쫙 찢어먹으라고.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전문가의 조언은 꼭 새겨들어야 한다. 아아아 이게 파네토네 구나. 묵직해 보이지만 식감이 무겁지 않다. 크루아상의 속살처럼 공기가 가득하다. 가끔 쫀득하게 절인 과일이 걸리면 어떤 과일일까 맞춰 보는 재미도 있는 데다가 달달한 주스가 되어서 피로까지 씻기는 기분이다.


아침에 깬 아이들이 아침 식사 빵을 찾는다. 몰래 뜯어버린 케이크가 미안해서 아이들에게 커다란 파네토네를 한 조각씩 크게 썰어 건넨다. 아침부터 달콤한 빵이라니 오늘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날이 되어버렸다. 한입 먹고 두 아기가 동시에 외친다.


"엄마!! 엄마!! 엄마!! 더!!! 더!!! 더!!!"


우리 집 아기들은 오늘, 아침부터 행복하다.


스페인 지로나에 위치한 Casa Cacao의 파네토네, 품절이 금방 되니 보이는 즉시 재빨리 클릭해서 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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