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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Nov 25. 2020

유럽에서 딱 이 계절에 먹어야 할 것

보졸레 누보, 마롱글라세 그리고 갓 짜낸 올리브유

11월 말 벌써 겨울이 되었다. 장롱 속에 잠들어있던 코트를 꺼냈고, 유독 추위에 약한 나는 벌써 패딩을 입는다. 몸이 따뜻해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아 올해는 더욱 두툼하게 옷을 갖춰 본다. 잠시 스쳐지나갈 줄로만 알았던 바이러스가 여름에도 공존하더니 코끝 시린 겨울까지 함께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2020년이 통째로 아쉬운 느낌이다. 바깥이 아닌 집에서 대부분을 보낼 때 중요한 것은 활기를 잃지 않는 거다. 잠옷 생활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틈 없기 십상인 집콕 생활. 그래서 때마다 이벤트를 챙기게 된다. 하루하루 계절을 챙겨본다는 핑계로 제철이라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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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프랑스 보졸레 지방에서는 보졸레 누보라는 와인을 출시한단다. 매년 딱 그때 나오는 햇 와인이다. 보통 와인이 6개월 이상 숙성시켜 출시하는 반면에 이 와인은 갓 따낸 포도로 후다닥 만든 와인인 셈이다. 최근에 SNS로 프랑스에 거주하는 분들을 알게 되면서 보졸레 누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는 순간 나도 마셔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 인간이 가장 참기 힘든 본능 중에 하나 아닐까? 가까운 나라 프랑스니 스페인에도 있을 것 같았다. 주말이 되자마자 온 가족이 와인 한 병을 찾으러 출동했다.


"안녕하세요. (Hola) 보졸레 누보 있나요?"

이 이름이 스페인어로도 보졸레 누보일까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당연하다는 듯 샵 입구에 놓인 병을 안내해준다. 13.40유로 비싸지 않다. 음미하며 마시는 값비싼 와인이 아니라고 했다. 인터넷에는 벌컥벌컥 마셔야 한다고 소개하기도 하고. 평소 레드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띵하게 아파서 잘 마시지 못하는데 이때만 마실 수 있다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사기로 했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 가득 찼다. 여담으로 요즘 스페인은 6인 이상이 모일 수 없는데, 와인샵에 많은 사람들이 한 짝씩 와인을 구매하더라. 파티도 못할 텐데 미리 와인셀러에 넣어두는 건지.. 엄청난 와인 소비량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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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롱글라세. 프랑스 아르데슈 지방의 명물이라고 하는데, 단밤을 진한 설탕 시럽에 졸이는 것. 스페인에도 길을 가다 보면 군밤 파는 곳이 종종 보이는데 향에 압도되곤 한다. 가을향이 솔솔이다. 지나가는 가을이 아쉬운 이 마당에 새로운 밤 디저트라니! 게다가 제철 아닌가.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한 스토리다. 그래서 와인 사냥을 성공하고 마롱글라세를 찾으러 나섰다. 새로 먹어보는 것, 첫 경험이니 유명하다는 수제로 찾을 수 있다면 제일이겠지만 여기는 프랑스가 아니고 스페인이니 해외 식품을 많이 구비해두는 고급 슈퍼에 가보기로 했다.


찾았다! 있었다. 와인과 함께 할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났다. 슈퍼에서 파는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대치가 낮으면 또 낮은 대로 의외로 행복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법.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 마롱글라세는 그냥 먹기도 하고 식사 후에 커피와 함께 하거나 브랜디에 담가 두었다 먹기도 한단다. 하나씩 금박 포장지에 고이고이 쌓인 동그란 밤. 이게 뭐길래 프랑스 사람들이 이 시기에 사 먹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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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한눈에 반할 정도의 맛은 아니다. 아마 와인은 과일을 넣고 따뜻하게 끓여 겨울의 와인 뱅쇼 (따뜻하고 달콤한 와인)로 탈바꿈해야 할 것 같고, 밤은 매우 매우 달아서 하나 이상 먹기 어렵다. 아주 좋은 마롱글라세는 단맛이 은은하다고 하던데 슈퍼 표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단것을 좋아해서 매일 하나씩 먹고 있다. 먹는 중에 보다 먹고 나서 남은 여운이 좋다. 가을이 남아 있는 느낌이다. 밤 향이 코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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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나는 스페인에 사는데 왜 프랑스 제철 식품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현실을 자각했다. 지금 스페인에서는 제철 송이버섯도 유명하다. 그렇지만 요즘 우리 집에서 가장 즐겨먹는 햇 음식을 꼽으라면 올리브유를 꼽겠다. 10월쯤부터 봄까지 수확한 올리브유를 갓 짜내서 판다. 병을 여는 간 빨리 소진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향긋한 올리브 오일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침 공복에 한 스푼 마시면 장이 깨끗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TMI 죄송). 여러 가공을 거치지 않은 이 햇! 올리브유는 느끼하지도 않다. 그냥 올리브 즙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스페인 사람들의 아침 식사를 볼 기회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빵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휘리릭 두르고 한입 앙 베어 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건강 지킴이 인 셈이다. 마침 제철이니 우리 집도 매일 먹는 거다. 피부도 좋아지고 심장도 튼튼해진다니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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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제철에 먹을 것을 찾다 보면 너무 어둡거나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은 즐거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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