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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Oct 07. 2020

진정성 있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고 우선은, 시작

도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어색한 단어인데,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은근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릴 때부터 명확한 소속감 없이 떠돌며 늘 이방인의 삶을 살던 나는 무조건 조금이라도 '큰 물'에서 놀자가 모토였고 지방 소도시에서 인서울로, 인서울 대학 국내파에서 통번역대학원 석사, 그리고 일본의 모광고대행사에 취업하기까지. 돌이켜보면 나름의 도전이었다.

와! 나름 힘들게 살았구나 나. (이럴 땐 더 잘난 사람들이나 더 열심히 산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 된다)

그러다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사람을 옆에 두지 않는 나로서는 이것 역시 큰 도전이었다),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도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생경했고 나 같은 게으름뱅이 평민에게는 왠지 닭살 돋는 카피라이팅 문구 같은 단어였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된 올해는 이상하게도 도전이라는 단어의 묵직함에 눌려 살면서도 바쁜 육아를 핑계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다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되었다.

 

앞으로 아이를 돌보며 '글쓰기'를 할 때에는 일부러 약혼반지를 끼기로 했다. 단칸방에서 파티션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작가가 돼버렸다.


나는 입시나 취업 합격 통보를 대자보로 확인한 세대도 아닌데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보는 장면과 비슷한 희열을 느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신나고 좋을까? 아마도 입시와 취업을 거친 후의 대개의 어른들이 '낙방 or 합격'이라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겪을 일이 없어서 일 것이다. 아무튼 첫 글을 어떻게든 써야 하는데 무엇을 소재로 써내려 가야 할지 며칠을 고민하며 브런치를 열었다 닫았다. 결국 아무것도 못쓰기를 반복.

(글의 카테고리는 또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제목은, 주소는 등등등 고심하느라 12시 전에 잠들던 내가 자면서도 고민할 정도였으니!)


그러다가 브런치 작가를 지원하면서 왜 다른 삐까뻔쩍(?)한 자극적인 소셜 미디어가 아닌 브런치에 터를 잡고 싶었는지 저장해둔 글이 생각났고 당시의 나의 기운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내 딴엔 좋은 날 글을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쓴다'라고 하면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거나, 아주 조금은 특별한 삶이라 일상을 엮어 내기만 해도 콘텐츠가 되는 사람이거나, 글재주가 좋은 사람이거나. 아무튼 나 같은 보통의 사람에겐 버거운 주제이기도 했는데, 글을 쓰기로 했다. 역시나, 좋아하니까.


사실은 나는 무척 아날로그인 사람인지라 종이에 만년필을 들고 끄적이는걸 더 좋아한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어도 그때그때 기록할 수 있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와는 다른, 쓰는 도중에 느끼는 희열과 깨달음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명상 대신 모닝 페이지를 썼고 요가 대신 일기를 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나 너무나 화가 나거나 억울한 일이 있을 땐 글을 쓰면 대부분은 해소가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나를 쓰게 만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라는 사람이 먹고 입고 생각하는 것이 엄청나게 바뀌게 되면서 기록하는 내용과 질, 양이 바뀌었다. 출산 직후 몇 달은 아예 못썼는데 정말 머리에 꽃만 달면 바로 비 오는 날 뛰쳐나갈 수 있을 직전의 정신상태였던 기간이었다. 다행히 천사 같은 딸아이 덕분에 아주 조금씩 내 시간이라는 게 생기면서 다시 끄적이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더,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대로도 좋지만 좀 더 체계적으로, 열심히 쓰고 싶어 졌다.

펜을 들고 종이에 끄적이는 것도 좋지만 욕심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고 감히, 힘이 되는 글을 남기고 싶어 졌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쓰다 버린 것 같은 블로그에 비공개와 공개를 왔다 갔다 하며 다시 끄적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아는 언니에게 본인이 책을 내는데 퇴고를 부탁해도 되냐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나는 그냥 코딱지만 한 방구석에서 애나 보고 있는 사람인데! 너무 신이 났다.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출력을 하고 빨간펜을 손에 들고 한 장 한 장 한 땀 한 땀 어설픈 첨삭을 해나갔다.


그래서 다시 한번 나도 제대로 쓰고 싶어 졌다.

다만, 각종 광고와 이미지가 난무하고 무엇보다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기는 껄끄러웠다.

대개의 소셜미디어가 그렇듯이, 타인을 의식하게 되고 사진 각도 하나부터 요즘 식으로 찍으려고 몸을 베베 꼬고 아다르고 어다르게 쓰다 보면 결국 진정성 있는 포스팅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더라.


글쓰기에 '도전' 하기로 했으니 진심으로 쓰려고 한다.

직업병일까, 어떤 목차로 어떤 식으로 쓸지 기획서 같은 것을 먼저 만들어놓고 시작해야 할까 며칠을 끙끙 앓다가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그냥 온 마음을 다해 시작해보기로 했다. 정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믿는다.


나는 진정성 빼면 시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만큼, 아무도 읽지 않는 것처럼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휘갈겨보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꿈을 응원하는 남편이 노트북까지 사줬으니 안 쓸 이유가 없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은 나에게는 사실 도전의 상징이 될 것 같다. 새해도 아니지만, 나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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