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정상인 줄 알았다

제왕절개는 정상이 아니야?

by 여름의summer

아이의 보육원(일본에서 보육원은, 일하는 엄마들이 맡기는 기관으로 한국의 어린이집) 문제로 며칠을 고민하다가 일단 신청서나 적어보자 싶었다. 지자체마다 양식이 다른 듯한데 내가 사는 곳은 무려 양식이 7장이나 되었고 몇 번 쓰다가 잘못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으며 한동안 한국 본가에 있었고 일본으로 돌아온 뒤로도 오로지 우리 세 식구끼리 시간을 보낸 터라 일본어를 읽거나 쓸 일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쓰는 일본 한자를 한 획 한 획 꾹꾹 눌러쓰며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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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꽤 개인적인 내용 아니야?

사생활 침해인데?

이게 왜 궁금하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이 보육원 맡기는 신청서를 일일이 손으로 써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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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기가 찰 무렵,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모자수첩을 토대로 신장, 몸무게 등의 태어날 당시의 상황을 묻는 란이 있었는데,

生まれた時の状況は?(태어날 당시 상황은?)
正常(정상)・帝王切開(제왕절개)・吸引(흡인)・仮死(신생아 질식) /不明
정말 숨도 안 쉬고 당연히 정상에 동그라미를 쳤었다

나? 나는 위에 설문 표부터 예 아니요 를 0.5초 안에 동그라미를 쳐오던 사람이다.

당연히 정상에 동그라미를 쳤다. 나는 내가 정상인 줄 알았다.


나는 32주 차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가 한국 출산을 감행했고 남편은 내 출산 월에 맞춰 한 달 휴가를 받아왔었다. 첫 출산인지라 나는 꼭 내 남편이 내 옆에 있기를 원했기에 예정일에 태어나지 않을 경우 유도분만을 시도할 작정이었다. 결국, 예정일이 지나도 엄마 뱃속이 어찌나 편한지 전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아이를 이틀 동안 유도분만을 시도하고 말 그대로 개고생은 다하고 결국 제왕절개를 택한 케이스이다. 생사를 오가는 분만의 고통은... 개인차도 크다고 생각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은 편이라고는 하나, 분만 방법은 개개인의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무엇보다도 뱃속의 아이와 산모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고 남이 했다고 해서 할 필요도 없고 남이 안 하는 걸 했다고 풀 죽을 필요가 하나 없는 것이다. 사실 분만방법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선택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젊고 건강하고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제왕절개를 한 나 역시 사실은 한두 달 가량을 자연분만에 '실패'했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 속에 살았다. 내 32년 평생 동안 부모님을 잃었을 때 보다 후유증이 더 오래 남은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우느라 내 아이가 이쁜지도 모르고 지냈던 나날이었고 그걸 지켜보는 내 남편은 더 힘들었으리라.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쓸데없었다.


그렇게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몇 달을 힘들어했다는 것이, 이 종이 한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전혀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이제야 납득이 간다. 그런데 일본 뿐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조리원을 가든 병원을 가든, 개인의 블로그든 '가능하면 자연분만으로' 문맥이 수두룩 빽빽하다. 조리원에 입소한 날 첫 질문이 그거였다. "ㅇㅇ산모님은 자연분만이시죠?"

그러고 보니 조리원을 알아보러 상담 다니던 날도 첫인사는 그거였다

"아휴~ 산모님은 젊고 건강해 보이셔서 자연 분만하시겠네요"


그때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인 이 아이가 본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주양육자의 반응에 의해서 규정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한 사회 속에 속해있고 그 사회는 항상 어떤 '관념'을 동반한다. 고로 우리들이 가지는 생각, 문맥 자체가 자가발전으로 생겨나기는 어렵다. 내가 속한 사회와 기브 앤 테이크를 통해 우리 속에 어떤 관념들이 자라나는 것이다.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평범한 여성이다. 인격이나 성격에 다소 문제가 있거나 몸매가 별로일 수는 있겠으나 신체 건강하고 옳고 그름을 아는, 굳이 따지자면 나는 정상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린이집 입학원서가 나 혹은 내 딸에게 정상은 아니라고 한다.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나에게만 정상인지를 묻는 줄 알았는데 태어날 당시의 상황이라는 질문이니 어쩌면 내 딸을 정상과 그 외로 분류 하는 의식이 반영된 설문이라고 생각하니 화까지 난다. 사람은 누구나가 정상과 비정상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밸런스를 맞추고 살 수 있으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정상이라 생각했다.



JYP가 공기반 소리반이라면 Japan은 공기를 읽으며 공기감으로 살아야 하는 나라다. 아무도 이래야 한다고 강요는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사회의 약속, 질서를 잘 지킨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지만 아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지만 뭔가 이상하거나 눈에 띄면 바로 그 정연했던 공기가 파동을 치는 그런 곳이다.


일본에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 포함 약 9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어마 무시한 세금을 착실히 내며 언어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굳이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외국인인 줄 모를 정도로 이 사회에는 잘 녹아있다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모르겠는 나라다. 어쩌면 싱글일 때는 알 필요도 없었고 지금까지는 그들의 정상이 내게도 정상이었고 그들의 비정상이 내게도 비정상이었을 것이다.



시작은 어린이집 입학원서 한 장이었으나, 이방인이자 엄마로서 앞으로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정상과 비정상인지 주기적으로 고민하게 되리라. 이방인의 일상이란 내가 매일 돌아서던 길모퉁이에서도 끊임없이 위화감을 발견하는 삶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정상이 아닐수도 있지만 내 소중한 딸을 만나게 해준 이 영광의 상처가 비정상인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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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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