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헛헛해서 라떼를 마셔

by 여름의summer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릴 듯하다가 안 내리더니 찔끔찔끔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마음이 꿀렁거리는 날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오래 살수록 외로운 나라라고들 한다. 나는 그저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들이 의례 하는 말이겠거늘 했다. 참고로 분명히 밝혀두겠으나 나는 언어나 문화 적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눈치밥 세월이 긴지라 원래도 미묘한 뉘앙스 캐치를 잘하는 편이었다.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의 귀신들만 모인다는 빡센 회사에 들어가서 적응을 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물론 멀쩡한 척 살아남느라 힘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떠돌아서였을까, 향수병이라는 것도 남의 이야기였고 특별히 한국음식이 먹고 싶다 생각한 적도 없었기에 한국 친구들이 외롭지 않냐고 물으면, 미안하지만 여기서도 너무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일본에 건너온 이래 가장 오랜 기간 한국에 머물러있게 되었고, 그 맛을 알아버렸다. 그 맛.


맛있는 집밥과 편리한 배달음식. 가성비 뛰어난 인터넷 쇼핑. 품이 낙낙하고 허리가 짧지 않은 예쁜 옷들. 빠르고 편리한 의료행정서비스. 믿을만한 병원. 좋아하는 재킷을 쉽게 살 수 있는 곳. 읽고 싶을 때 찾아 읽는 한글책. 일 년 만에 만나도 인사치레 스킵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는 ㅂㅇ친구와의 대화. 속에 있는 것을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존재들. 모국어로 조잘대도 좋게든 나쁘게든 전혀 바뀌지 않는 주변의 시선. 당연히 '우리나라'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가오는 타인들의 인사 한마디 그리고 이어가는 대화. 나 사는 거 바쁘다고 연락 뚝 끊고 지내다가 조심스레 연락했음에도 반갑다, 더 자주 보자 해주던 대학원 선배들. 같은 뉴스를 보고 같은 위기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공기들, 사람들.

사람들.


특히나 '국민템'이라 불리는 육아템을 쇼핑하면서 더더욱 나는 소위 말하는 국뽕에 취해있었던 듯한데, 아무튼 나는 출산휴가를 받아 회사를 나올 때 마음과는 다르게 아이를 낳은 후 연락하고 싶은 일본 지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의무감으로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굳이 먼저 연락을 취하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변한게 아니다. 뭐라 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변한 것이다. 내가 마음의 문을 일방적으로 닫아버리기 시작했다. 흔히들 일본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다테마에와 혼네가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그건 고리타분한 옛교과서적 발상이고 실제로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지만 그때와 지금 뭐가 그리 바뀌었는지, 소셜 디스턴스가 아닌 재패니즈 디스턴스를 내가 알아서 더 많이 취하고 있다. 물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인생에서 큰 일을 겪었다고 사람이 180도 바뀌지는 않는다. 그저 본래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 가치관, 우선순위가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다.


아무튼, 이제와서 타지살이가 외롭다거나 인종차별과 같은 뭔가 엄청난 일이 있었다거나 일본인들의 문화차이같은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른 큰 대륙으로 이주한 분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와는 또 다른, 뭐라 콕 집어 말할수는 없지만, 이 나라도, 도쿄에서 만든 인연들도 점점 더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가족 외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 나가는 것이 피곤해서 피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로 생기는 마찰을 해소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정답인 문화임을 알기에 조심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마치 1명의 아웃사이더가 29명의 반 친구들을 따돌리는 것처럼 나 스스로가 그들과 나는 백그라운드가 다르다는 생각에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고.


나라와 문화차이가 아닌, 그저 개인의 차이로도 볼 수 있지만 뭐라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나 혼자만의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러던 와중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기 K집에 놀러 갔다. 여러모로 비슷하여 친하게 지냈던 동기. 대학원 졸업 후의 입사라 나이가 동기들보다 두세 살 많은 점도, 결혼한 시기도, 아이를 낳은 시기도 엇비슷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건은 비슷하지만 스타일은 나와 확연히 다르네. 아무튼 우리는 친했고 내가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에 먼저 연락을 주어 만나기로 했다. 그녀의 15개월 아이와 나의 아이를 만나게 해 주자며. 출산 후 시댁을 제외하고 아이를 데리고 장시간 '놀러'가는 것은 처음인지라 비 오는 날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바리바리 챙기고 9킬로의 아이를 안고서도 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 가끔 이렇게 바람도 쐬고 사람도 만나고 수다도 떨면서 디톡스(?)도 하고 해야지. 막상 움직이면 마음이 달라진다니까'



돌아오는 버스 안, 나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 집에서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친구 딸 때문에 에바가 계속해서 울기는 했지만, 그냥 대화를 하자고 꺼낸 에피소드에 재단당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 상할만한 엄청나게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랜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러 나간 것이 도리어 마음이 헛헛해져서 돌아왔다.

'또 다른 (일본인)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상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은데, 또 다른 일본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했다가는 햇고구마를 되로 주고 말로 받을 것 같아 관두었다. 그 대신, 내 품에서 잠든 딸아이를 안고 나의 가장 만만한 음료 아이스라떼를 마시기로 했다. 점심도 성에 안찼고, 꼭 마셔야 했다.


이제 내 모든 사진에 니가 존재해.


결국 한국에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이런 일이 있었는데...@#$$#^@$%...뭐라고 콕찝어 말할 순 없지만 지금 내 마음은 이래...*$@%"


내가 겪었던 일들을, 우리가 나눈 대화를, 나의 감정을 모국어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다 듣고 난 언니는

"그래, 그게 간극 아니겠니? 국제결혼한 친구들도 끝까지 해결되지 않는 간극이 있다더라. 영원한 평행선 같은 거지. 성격이 달라서 힘든 게 아니래. 성격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당연히 다 다른 거고."

"맞아 언니!"


곤히 잠든 에바가 없었더라면 나는 무릎이라도 치고 싶었다.


성격 문제가 아니다. 의도가 나쁜 것도 아니다. 나쁜 말을 들었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나쁜 상황을 나쁘다고 말하고 풀 수가 없다. 뭐라고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진심은 전해진다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 만한 대화는 피하고 싶고 그래야 했다. 아아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데 글로 어찌 표현하랴. 뭐라고 집을 수는 없는 이 애석함. 그나마 내 남편이 유년기를 한국서 보내어 다행이라 생각한 순간이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잘 들어줘서, 찰떡같이 보듬어줘서.



외로워서 어떡하냐. 여름아, 그 마음 알아. 그냥 네가 강해져야 한다.


전화 말미에 툭 던진 언니의 한마디에 뱃속이 꿀렁거렸다.

쉬이 내 마음을 드러냈다가는 되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공기에 감정이 억눌려있었나 보다. 나는 그냥 별일 아닌 오늘의 일을 말했을 뿐인데, 강해져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약해졌었나보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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