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만 차마 하지 못하는 이야기
2013년 입사 후 신입연수부터 우연히 옆자리에 앉고, 당시 샤이니에 관심이 많았던 그 아이와 나는 동기들에 비해 3살이 많은 점 등 지금 생각하면 그다지 많다고도 할 수 없는 공통점으로 연대감을 만들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회사에서 공공연하게 돌던 그 아이의 스캔들을 나만 모른 척하며 귀를 닫고 입을 닫고 지낸 것이었다. 그렇게 신뢰를 쌓으며 그 아이 집에 초대받기도 하고 매년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함께 대만 여행까지 갈 정도로 나름 친하다면 친하게 지냈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솔직히 말하면 남들에게 '너희 친하지' 카테고리 속에 들기는 하나, 여러 부침과 실망 포인트들이 있었기에 내 마음속에서는 조금씩 그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관점이지만 그 동기 아이와 나는 처음부터 친해진 게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나 다른 아이 었다.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성격도, 자라온 배경도, 좋아하는 스타일도... 그럼에도 그 아이에게 나는 이상하게 아주 약간의 라이벌이었던 듯하고 나 자신이 그다지 매력적인 여인이 아님에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면 백이면 백 꼭 불편해질 만큼 나를 묘하게 돌려 밀어내는 질투 비슷한 기류가 느껴지는 아이 었다.
나와는 다른, 전형적인 좋은 집안의 규수로 적정 연령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조롭게 본인의 플랜대로 살아가던 그녀. 내가 불안정한 시기에 에바의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의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도 무알콜 와인을 마시는 나를 보고 무언가를 눈치챈 듯 뻔히 내 눈 앞에서 옆사람과 속닥거리며 웃던 그녀. 본인에게 제일 먼저 얘기하지 않은 내가 이해가지 않는다며 후일 만난 자리에서 열폭하던 그녀.
말하자면 그녀와 마음의 거리를 벌리게 된 계기는 꽤 많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며칠 전에도 멀리 이사 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는 제안에 오랜만의 자부 타임을 즐겨볼까 하여 오케이하고 만났는데 결국, 나는 또, 여전히 그녀와의 만남 이후 소화불량이다.
반년여만에 만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그녀에게서 듣는 회사 이야기는 신선했고 한 달 이상 지나간 생일선물을 건네주는 그녀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한잔 두 잔 기울이던 그때.
"Mana, 너무 부럽다. 이사 준비는 잘 돼가? 나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데 동네 선정하는 게 너무 어렵네"
"어딜 가든 내가 사는 곳이 집이지. 로마에 가면 로마에 법을 따르게 돼있어."
"응, 그건 그런데 에바가 앞으로 수년은 일본에서 살 것 같은데 에바가 차별 같은 것을 겪게 될지도 모르니까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그런 관점으로 동네를 고르고 있거든. 내가 당하는 건 잠깐 열폭하고 수다 떨며 풀면 그만인데, 내 자식이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신경 쓰이네. 실제로 엄마와 한국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는 이야기를 아직도 많이 듣기도 하고"
"어차피 애들은 커가는 과정에서 이런 거 저런 거 겪는 거 아니겠니? 난 그렇게 생각해. 나도 학교 다닐 때 이지매 같은 거 당한 적 있지만 그것도 하나의 경험이고 성장의 기반이 되는 거지"
왜였을까.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삼키지 못하는 다이아몬드가 내입에 콱 들어온 마냥 뱉지도 못하고 씹지도 못한 채 나는 멍청하게 오물거릴 뿐이었다.
"아니, 그런 이지매와 인종차별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해. 내가 선택한 문제로 당하는게 아니잖아"
겨우 반박(?)한다고 뱉은 말은 이게 다였고, 그날은 또 그렇게 무난하게 별 탈 없이, 즐거웠다 다음에 또 보자며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아니, 실제로 다음 약속도 잡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체어 있다. 이틀이나 지나서야 남편에게 솔직히 털어놓았고, 그야말로 뉴욕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나는 상상치도 못할 차별을 당했던 남편이 매우 불쾌해했다.
"이지매와 인종차별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둘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어떻게 다르다고 매우 논리 정연하게 따박따박 그녀에게 바로 되받아칠 수 없었던 나의 무지함과 순발력과는 거리가 먼 나의 느릿한 사고 회로에 너무나 화가 났다. 어차피 할 말이 많았어도 '또' 그녀와 불편해지기 싫어서, 혹은 귀찮아서 흘려보냈을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영국에서 2년여간 유학 경험이 있는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함부로 '넌 당해보지 않아서 몰라'라며 단죄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러나 한 조직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는 있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로 '너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belong)' 밀어내면서 평생 그 사람의 정체성의 뿌리 자체를 흔드는 것은 분명 다르다. 매우 큰 잘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히 그 둘다 겪은 사람으로서 말하건데, 인종차별이든 집단 따돌림이든 한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 저질스러운 범죄들이 한번쯤은 겪을 수 있는 '성장과정'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주류인 곳에 속해있다보면 간과하기 쉬운 문제. 문제라 느끼지도 못할 만큼 이것이 인종차별인가?라고 굳이 따져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우리 일상 깊은 곳에 침투해 있는 문제. 나 역시 지금 이 순간도 ‘일본인인 너와 마음 깊은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다툴수도 없어’라 단정해버리는 게 어쩌면 차별 아닌 차별일지도.
미국에서 마침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그것과 여기서 내가 겪는 건 또 다른 결의 문제다. 외관상으론 그들과 다르지 않는데 (물론 꾸밈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내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남편이 어설픈 일본어로 발화하는 순간 돌아오는 눈총들, 미묘한 뉘앙스로 깔아뭉개는 공기반 차별반.
문화센터에서 만난 미국인 혼혈 아이 엄마들과 대화 중 내 남편도 '미국인'이다고 말했을 때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의 내 딸을 다시 보는 그들의 시선과 'あーそうなんですねーへー’(아-그러셨군요-헤-) 로 끝나버리는 대화.
물론, 난 불과 몇 년 전 긴자의 한 술집에서 한국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다가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금으로 치렁치렁한 제비족 아저씨한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대놓고 고함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밖의 수도 없이 겪어야만 했던 직간접의 불쾌한 경험들.
그렇다고 누군가 나, 그리고 내 가족을 함부로 대했다고 해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무시한다고 무조건 열등감에 사로잡힐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난 그저 '내 자식을 누군가 함부로 대한다면 열불 날 것이다'라고 내 '친한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래, 내 소화불량은 이거였다. 마음 놓고 속 이야기를 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다시 힘을 내고.
왜 이게 이렇게도 어려운 걸까.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다니. 사회속에서 고독한 싸움을 했을 많은 분들의 절망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왜 우리는 '친한' 카테고리에 들어갔을까. 이쯤 되면 손절할 법도 한데.
최대한 피하고 피한다는 것이 일 년에 두세 번은 만나게 되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그때마다 늘 '뭐라 말할 수 없는' 소화불량에 시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