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too short
워낙 한 폼생폼사 하는 남편이기도 하고, 미쿡 사람이라 그런가 내 남편은 야외에서 먹고 마시는 걸 엄청 좋아한다. 일본은 워낙 소방법 같은 것이 엄격하여 스카이 테라스가 딸려있는 식당에서조차 케이크에 촛불을 못쓰게 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테라스 석이 딸린 레스토랑 자체가 많지 않은 편이다. 남편 썰에 의하면 가정 내 베란다는 대부분 빨래를 널기 위한 자리로서만 활용된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우리의 코딱지만 하지만, 뷰만큼은 죽여주는(에바를 임신하기 전, 뷰때문에 이 집을 골랐었다) 우리 집 베란다를 어찌 활용할 수 없을까 하다가 기어코 손바닥만 한 테이블을 설치하고, 접이식 소파까지 구입하여 나에게 엄청나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주셨다.
"어때, 편하지? 자기도 맨날 에바랑 방안에서만 있기 답답하잖아. 에바 잘 때는 여기 나와서 이렇게 밖을 내다보면서 멍 때리고 커피도 한잔하면서 글도 쓰고 그래요"
"여기서 자기랑 술 한잔 하면서, 삼겹살 캬~!" (참고로 일본 맨션 베란다에서 바비큐는 절대 NG다)
귀여운 남편. 본인의 로망 실현을 위해 구입한 기자재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내 마음에 어떻게든 들게 하고자 온갖 미사여구로 어필한다. 남자들이 취미생활을 위해 피규어같은 것들을 살 때마다 부인들과 한바탕 한다던데 사실, 내 눈치 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자 싶어 이럴 땐 나도 잔소리는 잠시 넣어두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래요, 편하네요 그런데 에바는 어떡해?"
"유모차나, 하이체어를 옆에 갖다 놓고 거기 앉혀서 보면서 먹어야지 뭐. 내가 케어 다 할 테니까 자기는 여기 앉아서 풍경 감상만 하고 있어!"
내가 수긍하자 광대 승천하며 몸소 시뮬레이션까지 하시는 남편.
(하... 10킬로 즈음되는 유모차, 의자를 그때그때 옮기겠다니. 정말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선 1도 귀찮은 것이 없는 남자로구나.)
그래도 내 남편의 작은 로망이라는데 와이프가 그것도 못 들어줄쏘냐. 어쨌든 나도 싫지는 않았기에 남편이 원할 때마다, 날씨가 좋을 때마다 남편에게 못 이긴 척 가끔 베란다로 나와서 스낵을 즐겼다. 마트에서 사 온 저렴한 벤또도, 건조한 초밥도, 다 식은 카레도 여기서 먹으면 맛있긴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효녀 에바는 크게 보채지도 않았기에 떡뻥을 쥐어주며 번 시간으로 우리는 잠시나마 부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날도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 공원 한 바퀴 산책하다가 남편이 굳이 베란다에서 뭘 먹고 싶다 한 날이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날씨에 그의 최애 이탈리아 맥주 비라 모레티로 목을 축이고 있자니 너무 행복해하던 남편이,
일 년에 적어도 1/3은 이런 날씨면 좋겠다.
한 100일?
나는 무심코 그의 바람이 참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1/3이라니. 1/3?
갑자기 나에게도 현타라는 것이 왔다.
일 년의 1/3이 100일밖에 안된다고? 너무나 야박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텐데. 인생에서 포근한 날씨에 따뜻함 혹은 시원함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남편은 1년에 딱 1/3만 바라는데 그게 고작 100일뿐이라니.
심지어 그마저도 바쁘거나 내 기분이 안 좋아서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절반일 것 같은데.
남편의 베란다(꿈)를 더 아껴주어야지.
뭐에 얻어맞은 듯 벙쪄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애기띠를 맨체로 카레 한 숟갈 뜨다가 어리둥절.
인생 짧다 짧다 하지만 진짜 짧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흐린 날도 여념 없이 사랑하시고, 맑은 날을 공짜로 얻게 된다면 꼭 놓치지 말고 아낌없이 누리시길.
좋은 날 아끼다가 똥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