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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summer Oct 23. 2020

혼술이 하고 싶다.

가끔 미치도록 혼자 마시고 싶을 때가 있어.

"혼술 하고 싶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한 잔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였다. 남편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그냥 대꾸해주기도 귀찮고 술은 마시고 싶은데 잔을 부딪히며 '짠-' 하는 것 마저도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혼밥 혼술이 유행하기 전부터 24시간 고퀄리티의 편의점 나라에서 막차(1:40 am) 퇴근을 밥먹듯이 하던지라 혼술을 즐겨 할 수밖에(!) 없던 나. 바쁘게 일을 하다 보면 아점이나 늦은 점심을 우겨 먹고는 저녁도 건너뛰다가 새벽에 들어와 빈속에 들이키는 차가운 맥주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그때의 버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빈속에 마시는 맥주를 난 좋아한다. 

그땐 그게 그렇게도 처량한 짓이라 생각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그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침해당할 때가 많다.


지금도 술 좋아하는 남편과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반주를 즐기는데 연애시절 가장 좋아했던 우리의 데이트는 선선한 대낮에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다른 한 손에 맥주 한 캔씩 들고 하는 산책이었다. 그마저도 이젠 여유치 않아졌지만 언제든 또 하고 싶은 데이트. 많이 마시지 않아도 따스한 햇살에 취하는 맥주 산책의 매력을 커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左)남편이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벚꽃구경을 하던 어느 4월의 도쿄.(右)같은 곳, 다른 시간 남편이 싸온 도시락과 와인 한 병을 들고 배를 탔던 우리.



아무튼 가끔은 내가 마시고 싶을 때 곧바로 오로지 혼자 두세 시간 즈음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남편이 100%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오프 데이를 주긴 하지만 막상 그런 날들은 안 땡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로지 나 혼자 술을 마시며 아무것도 안 해도 좋고 유튜브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어도 좋고 무작정 외로워도 좋다. 막상 뭘 해야 될지 몰라 덮어놓고 먹다 보니 폭음을 하고 폭식을 하게 돼도 괜찮다. 그냥 그 아무도 끼어들지 않는 침묵의 시간.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도, 맞장구를 열심히 쳐주지 않아도, 평균이거나 굳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


마시다가 나른히 늘어져서 휴대폰을 붙잡고 에바의 사진을 뒤적거리며 히죽거리게 될지라도, 그 몽롱한 시간을 오로지 혼자 다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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