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peach Apr 15. 2021

글쓰기의 어려움

내 이럴 줄 알았지

3월 중순에 시작한 글쓰기 수업도 벌써 5회 차를 마쳤다. 이제 두 번의 모임을 더 하면 수업이 끝난다.


수업 구성은 심플하다. 수업 시작 전까지 수강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모두가 읽고, 글쓴이를 제외한 아홉 명의 다른 수강생들이 돌아가면서 감상과 의견을 말한다. 이어서 작가님이 글 전체를 꼼꼼하게 훑으며 수정이 필요한 부분뿐 아니라 더 좋은 글이 되기 위한 제안까지 포함해서 여러 각도로 첨삭 지도를 해주신다. 


구성이 심플한 반면 수업 시간은 회당 4 시간으로 긴 편이다. 한 번 모이면 다섯 편의 글을 다루는데, 글 한 편 당 40~50분 정도 소요된다. 수강생들은 다들 본업이 따로 있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글쓰기 수업을 위해 모인다. 평소 같으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쉴 시간이라 꽤 피곤하지만, 대부분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자리를 지킨다. 


밤 수업이고 시간이 길어서 졸리고 지루할 법도 한데, 모두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 하지만 눈동자만은 살아있다. 그럴만한 게, 대학 수업처럼 4 시간 동안 작가님이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글을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방식이다. '결말이 너무 급작스럽게 끝나서 아쉬워요. 내용을 좀 더 써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묘사를 좀 더 보완해보면 어때요?', '앞에서는 만족한다고 해놓고 뒷 단락에서 불만이라고 쓰니까 앞 뒤 연결이 안 돼요' 하는 식으로 수업 내내 의견들이 오고 간다.


글쓰기 수업에 참석한 구체적인 목적이야 수강생 저마다 다르겠지만,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공통일 것이다. 수업의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수강생 사이에도 동지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내가 내 글을 잘 쓰고 싶은 만큼 저 사람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겠지. 어떤 부분들을 이야기해주면 저 분이 글을 더 잘 쓰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 하에 글쓴이에게 쓸모가 있을만한 말을 뭐라도 해주려고 애써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글쓰기 모임 멤버들이 내가 글을 잘 고쳐 쓸 수 있도록 그 늦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모여 앉아 졸리는 눈을 비벼가며 애쓰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그게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든 내 글에 그 의견들을 반영하고 싶은데, 퇴고를 한 줄도 할 수가 없다. 애초에 내가 쓴 글에 공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내 글이 잘 쓴 글이라는 이야기가 당연히 아니다. 글을 쓰는데 품이 너무 많이 들었고, 고치는 데는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나는 주로 실용적인 글쓰기를 해왔고, 내가 썼던 글은 객관적인 사실, 주장, 설득과 논리, 당위, 앞으로의 계획 같은 내용이었다. 특히나 '내가 글감이 되었던 적'은 극히 드물다. 이번처럼 나를 주제로 글을 쓰느라 이미 에너지가 탈탈 털렸고, 이 정신 상태로 글을 고칠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서 겨우 두 발로 섰더니 걸어보라는데, 걷는 게 뭔지 도대체 모르겠는 것이다. 왼발에 힘을 주고 오른발을 떼면 된다는데, 오른발을 떼면 자빠지는 거 아닙니까.


나도 머리로는 안다, 어려워도 자꾸 고쳐 봐야 글이 는다는 것을. 그런데 이렇게나 첫 발이 떼지지 않는 이유는, 발을 뗀 후의 상황이 마음 속에 그려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오른발을 떼면 백 퍼센트 넘어질 것 같아서 그렇다. 첫 발을 떼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딛고 있는 발을 중심으로 동적인 상태에서도 균형을 잡는 감각이 필요한데, 이제 겨우 일어서 본 나로서는 두 발을 디딘 정적인 상태의 균형 감각도 서투른 마당에 동적인 상태는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을 신청할 때, 글을 쓰는 재미를 좀 더 잘 느끼기 위해 글 쓰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목표는 확실했고, 그 과정에서 글을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히 했다. 다만 소통이 어느 정도 깊이로 이루어질 지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못 했다. 특히 자신이 없는 부분은 내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이 관심 갖을까 하는 것이다. 나처럼 재미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읽어줄까, 이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던진다.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을 때마다 이 질문부터 시작한다.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을 할 수가 없어서 그 이후로 진도가 안 나간다. 모든 문장이 막막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글을 쓰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을 신청하고 밤늦게까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걸 보면, 글을 쓰는 게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하다. 또 혼자만 간직하는 글쓰기보다는 글로 남들과 소통하는 것이 그 의미를 더 증폭시킬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오늘도 나는 위의 질문에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OOO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라는 문장을 완성해내고, 힘 있게 글을 쓰게 될 그 날까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합평 1차] 우리는 항상 함께 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