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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Feb 28. 2020

연말정산이 이렇게나 어려웠나?

공장에서 일 한지 벌써 8개월 차. 생각해보면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낯설기만 했던 거래처의 이름이 익숙해지고, 어떤 기업은 사장님 성함까지 외우게 되었다.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숫자도 이제 쉼표만 봐도 얼마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 월말에 있는 세금계산서 발행도 쫄지 않고 하게 되었고 말이다. 


이까이꺼 별 거 아니네, 하며 자만하고 있을 즈음, 한 해 가장 중요한 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바로 연말 정산. 연말정산을 해 본 지 너무 오래전이라(얼마 전까지 공부한다고 일을 거의 안 해서..ㅠ), 가물가물 했지만 그렇게 어려웠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국세청 홈텍스에 들어가서 서류 다운로드하여 회계사무실에 보냈던 것 같은데, 그럼 다른 직원들 것도 같이 모아서 보내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는. 


직원들은 그냥 홈텍스에 들어가서 연말정산 서류 다운로드하여서 제출하기만 하면 되지만, 그보다 먼저 회사 사무실에서 챙겨야 할 건 많았다. 우선 직원들 근태상황 및 임금대장을 결산해서 보내야 했고, 매입출 내역도 정리해서 회계사무실에서 신고한 내역과 다른 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더불어 재고 관리도 해야 했고. 물론 원자재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내가 봐도 알 수 없는 부분이라, 사장님과 공장장님이 해주시고, 내가 문서를 작성했다. 


사실 직원들과 관련한 부분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정말 어려운 건, 회사 관련한 부분이고, 특히 내가 없었던 때에 했던, 그러니까 지난여름 이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서류를 내야 할 때였다. 나름 정리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웬만한 건 다 엑셀이나 워드 파일로 다 만들어 두었다. 그렇지만 그 이전의 자료는 그렇지 않다. 전부 수기로 기록되어 있고, 또 내가 정리한 문서가 아니고, 게다가 수개월 전의 일이라 이미 다 캐비닛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특히나 단발성으로 진행된 일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 


연말정산 때 필요했던 서류는 상반기 일용직 노동자들과 관련한 서류와, 또 없어진 몇 장의 영수증. 그 서류들을 찾기 위해서 서랍과 캐비닛을 다 뒤졌지만 못 찾았고, 결국은 전에 일하시던 K씨를 호출하기에 이르렀다. 나 같았음 안 알려줬을 건데, K씨는 상냥하게 알려주셨다. 의외로 서류는 바로 옆에 있었다. 기타 서류를 모아두는 파일에 섞여 있었던 것. 그 서류가 거기에 섞여 있었던 이유는 이전까지는 일용직 노동자를 부르는 경우가 없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몇 번 그들을 단기간 고용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와 관련한 서류를 한 번 제출했었기 때문에 끝났다고 생각하시고 기타 서류에 넣어두신 거였다. 그러니까 상시적인 일이 아닌 데다, 이미 신고할 부분은 다 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안 쓰신 거였다. 그런데 연말에 이렇게 또 그 서류가 필요할 줄이야. 


없어진 영수증은 대개 공장 식대와 주유비와 관련한 부분이었다. 가끔 회사 카드로 결제하지 않고 어떤 사정들로 직원들이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고 청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종종 영수증이 없어진다. 또는 회사 카드로 결제를 하고선 영수증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후자의 경우엔 어차피 카드회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물론 내가 불편!!) 전자의 경우는 참 안타깝다. 일 하면서 쓴 돈인데 회사에 당연히 청구해야 하지만 영수증이 없어서 청구할 수 없다니. 그래서 웬만하면 사장님께 말씀드려서 쓴 비용을 돌려주는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세금과도 관련되는 부분이거니와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욕받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님은 나한테 화를 내는 게 아니고 혼잣말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사장님이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있으면 누가 듣겠냔 말이다. 정작 들어야 할 직원은 바깥에서 일하고 있는데! 결국 내가 고스란히 다 듣고 있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억울하군. (다음에 또 이러면 사장님 들이받....)


아무튼 이렇게 빠진 영수증이 매입에서도 빠지다 보니, 회계사무실에서 정리해준 금액과 내가 정리한 금액이 다른 것이다.  빠진 영수증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다행인데, 그걸 까먹으면 헬게이트 오픈!! 금액이 달라서 영수증을 다섯 번 뒤져서 찾아냈다. 하.. 크지도 않은 금액이었는데.. 우 씨.. 다시 생각하니 그때의 답답함이 떠오른다.. 이제 그만 생각해야지.


어쨌든 영수증과 서류를 다 정리해서 회계사무실에 보내고, 그렇게 매입출 정리가 끝나고 나니 내야 할 세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세금 고지서를 보시더니 사장님 또 흥분하셨다. 왜 이렇게 많이 내냐고! 누가 들으면 한 몇 십억 내는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심지어 주변의 공장들보다 더 적게 나왔다). 작년보다 조금 더 나왔다고 흥분하신 거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세금은 번 만큼 내는 거고, 쓴 만큼 감면되는 거니까, 좋은 데에 좀 쓰시고, 또 제 월급 좀 많이 올려주세요, 그럼 세금이 지금 보다 좀 더 줄겠죠, 라고. 사장님이 눈으로 욕하셨다.


이렇게 경량급 회사에도 이렇게 챙겨야 할 게 많은데, 큰 회사들은 연말이 얼마나 전쟁일까 싶다. 비록 월급도 경량급(!)이지만 연말정산이 빨리 끝나는 작은 회사를 다녀 다행이다 싶다. 그렇지만 내년엔 허둥지둥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길 바라며.




#연말정산 #이런건줄몰랐어 #경량급회사 #경량급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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