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앞에 있던 학교에서 서울 끝자락의 어느 학교로
중학교에 입학하던 2017년, 나는 내가 다닐 학교 뒤쪽에 있는 아파트에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2020년엔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또 이사를 갔다. 그래서 통학에 대한 신체적 부담이나 정신적인 고통은 딱히 체감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버스, 지하철을 동원해 먼 거리를 통학하는 친구들의 고충은 앞으로도 내 얘기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이렇게 안일한 생각을 한건지 싶지만.
전환점은 금방 찾아와, 나는 서울 끝자락의 어느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지하철만 이용했을 땐 30분 내외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문제는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시간 30분의 긴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6년만의 장거리 통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1시간 30분은 내 생각보다 훨씬 길고 고된 시간이었다. 등교를 위해 버스 두 번, 지하철 두 번을 거친다는 건, 출근시간대의 버스와 지하철의 많은 인파를 견뎌야한다는 뜻이었다. 어디로 눈길을 돌리던 피곤에 찌든 사람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통학을 막 시작한 대학교 1학년 때는 전공도 힘들고, 동기들과도 친해지지 못했던 터라 '굳이 이러면서 학교를 다녀야하나?'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현재 막학년을 앞두고 있다. 머나먼 서울 끝자락에 있는 학교, 짧지 않은 3년제 학과를 다니며 2년을 버텨냈다. 1시간 30분의 통학시간, 두 번의 환승과 함께하는 2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버텨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느끼지 못하는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나를 버티게 해줬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사는 내가 서울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한강을 건너가야만 했다. 어두컴컴한 풍경에서 갑자기 밝은 한강으로 바깥이 변할 때, 특히 맑은 날 물결이 선명하고 푸른빛이 아름다운 한강을 건널 때 나는 그 힘든 통학길 속에서도 잠깐의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어떤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는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잠깐의 한강을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기나긴 통학길을 버틸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것을 좋아하고, 내게 주어진 과제나 할 일을 하는 '카공'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 카페를 자주 가는 사람, 진심인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오히려 좋았다. 학교에서의 빽빽하고 힘든 일정이 끝나면 좋아하는 카페에 달려가,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매 순간마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야' 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매번 지하철의 많은 인파에 치일 때도, 전공 공부가 너무 힘들어 우울해할 때도, 이 학교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수없이 생각할 때도, 그럼에도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야, 오늘도 힘들면 다 때려치우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1학년을 버텼고, 2학년을 버텼다. 그 생각으로 버텨 결국 3학년이 되었고, 끝내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괜찮았다. 처음부터 괜찮진 않았고, 적응하기까지 많은 감정을 삭히고 버렸지만, 그럼에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 있어서 버텼고,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괜찮아졌고,
지금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