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려 더 빨리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집 앞 마당에서 씽씽카를 타다 순간 바라보았던 노을진 하늘, 문방구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뜨거운 여름날, 친구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던 짧은 쉬는시간. 영원히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아 한없이 길어보이던 순간들은 어느새 '과거'가 되었고, 그 순간들은 어느새 많이 잊혀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잊고 싶지 않았다. 노을진 하늘,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함께하던 어느 여름, 짧은 쉬는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이 순간을 한 치라도 망각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잊고 싶지 않던 모든 걸 잊고 사는 사람이 되었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은 더 빨리 잊혀진다' 라는 생각이. 내가 정말 사랑하던 사람의 목소리, 솜사탕처럼 달콤한 추억들은 한 순간에 피고 질 꽃처럼 져버리고, 낙엽처럼 떨어지고 으스러진다. 아무리 잊지 않으려 손을 뻗어봐도, 힘껏 쥐어봐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뿐이다.
'인간의 축복 중 하나는 망각'이라는 말이 있다. 망각함으로써 많은 기억들이 잊혀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기억들이 다시 채워지는 것이라고. 지금껏 살아오며 느낀 바로써는 딱히 부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잊고 싶지 않았다. 나의 순간들은 그렇게 쉽게 잊기엔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며 얼마나 많이 소중한 순간들을 잊게 될까. 얼마만큼 잊고 잃어버리고 바래져야 할까. 이 망각의 끝이 보이지 않아 한없이 경이롭고 막막하다. 망각이란 섭리 앞에서 한낱 인간인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덜 잊었으면 좋겠다. 내가 잊고 산다는 걸 알아버린 이상, 너무 큰 욕심일지라도 감히 바래본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순간들은 쉽게 잊기엔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