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북으로 변신한 노트북

나도 리폼이 될 수 있을까?

by 여름별아빠

한 달 전인 2026년 1월 말, 퇴근길에 그동안 미뤄왔던 노트북을 수리하기 위해 가까운 서비스센터에 들렀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이 노트북은 부품을 세 개 교체해야 되는데, 외부케이스 부품이 단종이 돼서 더 이상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럼 못 고치는 건가요?"


"네. 새 부품이 더 이상 나오지가 않아서 그냥 이대로 쓰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노트북 자체는 아직 속도도 빠르고, 괜찮은 제품인데... "


"혹시 케이스 리퍼부품은 나오지 않습니까?"


"케이스는 리퍼부품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 그럼 사설 수리업체에 가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 고객님, 고객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제가 나름대로 수리를 한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이게 완벽하게 고쳐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고, 케이스도 흰색이 아니라 검정색이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간도 좀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사용하던 부품들을 구해와야 돼서 그렇습니다. 대신 사용하던 부품이라 부품비용은 받지 않겠습니다."


"네. 사용할 수만 있으면 검정색이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고요."


나의 간절한 눈빛이 통했나 보다. 집 한구석에서 묵혀둘 뻔했던 오래된 노트북을 살려주실 수도 있다니, 고쳐주시기만 한다면 그저 감사한 일이다.


수리를 맡긴 노트북은 딱 10년 전인 2016년부터 사용하던 노트북이었다. 당시에는 속도도 괜찮은 중상위 모델로 평소 노트북으로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던 나에게는 아주 과분한 노트북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 잘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아들이 노트북으로 지하철 동영상을 보고, 지하철 사진을 저장한다고 열심히 사용하면서부터 속도도 느려지고 이곳저곳 탈이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들은 노트북을 여기저기 들고 다니다가 떨어트려 부숴버리고 말았다. 노트북의 옆쪽 전선은 삐죽삐죽 다 튀어나왔고, 혹여나 완전히 부서질까 싶어 제대로 닫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노트북은 우리 손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고, 편리함 때문인지 아이들은 태블릿 PC, 나는 핸드폰을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들이 너무 열심히(?) 사용해서 결국 다쳐버린 노트북


하지만 작년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핸드폰으로 주로 글을 썼는데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글자도 작을뿐더러 편집하기도 어렵고, 손목과 팔꿈치도 아픈 불편투성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꼭 저렴한 가성비 노트북이라도 하나 사서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써 보는게 내 목표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올해 갑자기 메모리 가격 급등으로 노트북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구매하고 싶었던 가성비 노트북 가격들마저 줄줄이 인상되고 말았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평소 내가 겪던 불편을 알고 있었던 아내는 "빨리 하나 사라"며 재촉했고, 나 또한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구매할 수는 있었지만, 작년 가격을 생각하니 도저히 아까워서 쉽사리 구매가 되지 않아 구매 버튼 앞에서 몇 번을 망설였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방안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부서진 노트북이었다. 우선 노트북을 꺼내서 느려진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파일을 외장하드에 옮기고 초기화를 시켜 보았다. 초기화를 하고 난 노트북은 대반전이었다.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이었다.

'진작 이렇게라도 해서 쓸걸. 괜히 미루고 있었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한 채, 이제는 노트북을 꼭 고쳐서 다시 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겨 버렸다.

사실 이 노트북은 아들에게 키보드 치는 법, 검색하는 법, 사진 저장하는 법 등 다양한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준 고마운 선생님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서비스센터,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노트북은 수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흐르는 시간 동안 소소한 일상은 계속되었다.


리폼(reform) : 새롭게 고치다.


마음의 리폼

2월 23일, 부산시 문화글판 공모전에서 가작 6명 중 1명에 선정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별 기대도 없었고, 노력한 거에 비하면 너무나 과분한 결과였지만, 막상 가작에 선정되고 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글판에 선정되는 것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내 또 털어내 버리기로 했다. 2023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한 몇 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열 번 응모해서 네 번이나 가작에 선정되었다.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에 네 번 진행하는 공모전에서 이번 봄편 선정으로 난 사계절 모두 가작에 선정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사계절을 짧게 잘 표현하는 남자”

이렇게 자화자찬하며,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의 리폼

그리고 다음날인 2월 24일, 갑상선(갑상샘)기능항진증 정기검사를 위해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2012년 갑상선(갑상샘)기능항진증을 처음으로 진단받은 뒤, 약은 매일 3회 복용부터 시작해서 점차 줄여 나갔고, 정기검사는 짧게는 일주일부터, 길게는 1년까지 검사간격을 넓혀 나갔다.

몸이 호전되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약 2년 정도는 약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21년 육아휴직을 시작하자마자 재발하였고, 다시 5년여 약을 복용하고, 중단하기를 반복하면서 오늘 다시 정기검사를 받으러 왔다.

채혈을 하고 난 뒤 결과까지 약 한 시간을 앉아서 기다렸다. 역시나 대학병원은 언제나 많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드디어 내 진료차례가 왔다.


"음.. 수치도 잘 유지되고 있고, 이제는 더 정기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검사일정은 없고,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엔 진료실을 나오는 길에 간호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15년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오히려 담담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에 앉아 있으니 그제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기분 탓이겠지만 내 몸이 새롭게 리폼되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노트북의 리폼

그리고 또 다음날인 2월 25일, 드디어 서비스센터 엔지니어분으로부터 노트북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말씀드린 대로 케이스는 검정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


"검정색이라도 괜찮습니다. 깔끔하게 잘 수리된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트북 수리하면서 확인해 보니, 전원 쪽 보드도 고장 나서 그거도 그냥 교체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수리비는 몇만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품 한 개 가격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살면서 여러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보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처음 받아 보았다. 어제에 이어 또다시 집에 오는 길이 행복해졌다.


집에 와서 노트북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위쪽은 검정, 아래쪽은 흰색인 꼭 판다같기도 하고, 체스판 같기도 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노트북이었다. 그래서 이름은 판다북으로 지어줬다.

판다북으로 변신한 나의 노트북


요 며칠 노트북을 수리하면서, 좋은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그래서 올 한 해는 새롭게 변신한 노트북과 함께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오늘 처음 노트북으로 글을 써 본다. 아직 적응은 잘 안 되지만, 확실히 기분은 좋다.

이렇게 노트북이 멋지게 리폼될 즈음, 내 몸도 마음도 노트북을 따라 리폼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이 노트북과 함께 글 쓰며, 표현하는 소소한 재미를 오래도록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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