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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햇살 Nov 20. 2024

끓는 용암 수 폭포, 겨울엔 더 예쁘다고?

비에이 흰 수염폭포

푸른 연못에서 흰 수염폭포까지는 5분 거리인데 차가 밀리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푸른 연못과 라벤더 정원에 갈 때 너무 고생해서 이번에도 당연히 오래 걸릴 거라 생각하며 미리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말 5분 만에 도착했다. 당연한 건데도 기분이 좋았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주차장도 비어있었다. 푸른 연못과 라벤더 정원은 여름 인기 지역이라 붐볐고 흰 수염폭포는 겨울에 인기 있는 곳이라 아무래도 좀 한가했나 보다.     


주차장에서 조금 걸으니 다리가 나왔다. 다리에 서서 바라보니 시원하게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 파란 하늘과 나무들이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이 경이로웠다. 제주에도 유명한 폭포들이 있다. 내게 가장 익숙한 것은 천지연 폭포, 서귀포 사람이면 누구나 만만하게 가는 곳이다. 동네 공원 가듯 "천지연 갈까?" 하고 가서 그곳의 자연을 느끼며 걷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곤 했었다. 그래서 폭포 하면 늘 천지연 폭포가 떠오른다. 이곳의 화산 폭포와 비교하니 애기 폭포처럼 느껴졌다.      


하얗게 떨어지는 물이 팔팔 끓는 용암수라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만지면 차가울 것 같은데 겨울에는 물줄기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고 한다. 그 모습이 하얀 수염을 닮아 '흰 수염폭포'라 이름 지었단다. 흰 수염 닮은 하얀 김은 안 보여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폭포 밑으로 옅은 푸른색의 물이 흘렀다. 제주의 맑은 금능 바다 빛을 떠올리게 했다. 투명한 물속으로 커다란 바위며 돌들이 그대로 보였다. 할 말이 없었다. 거대한 폭포수가 내려와 그렇게 매혹적인 모습으로 흐르다니.      


다리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모습의 조용한 강을 볼 수 있었다. 푸른 숲에 둘러싸여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잔물결만 빛나는, 그 자리에 그냥 멈춰 있는 것 같은 고요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충분한데 겨울엔 더 멋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더할지. 금방 흥미를 잃는 남편도 이번엔 한참을 조용히 보았다. 여름의 홋카이도는 뜨거웠지만 더위 정도는 감당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게다가 이번엔 별로 고생도 안 하고 왔으니 만족감이 더 컸다. 

    

폭포의 아름다움을 품고 돌아 나오는 길에 작은 매점이 보였다.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유제품, 멜론, 감자, 옥수수로 만든 음식들을 파는 듯했다. 푸른 연못에서는 다들 버스를 일찍 타고 있더니 이번엔 일행들 손에 간식거리가 많이 들려있었다. 이제 마음이 좀 풀린 모양이었다. 짙은 주황색의 멜론 빙수가 너무 궁금했지만 푸른 연못에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구경만 했다. 여행의 즐거움엔 먹는 행위도 포함인데 예전과는 달리 많이 안 먹어도 금방 배부르고 소화도 어렵다.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여행을 실컷 하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다.       


주황 멜론 빙수를 못 먹어 아쉬운 마음에 자꾸 돌아보며 시간 맞춰 버스로 왔는데 한 팀이 안 보였다.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잠시 뒤 "저기 엄마랑 뛰어오네. 효자야, 효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아들이었는데 많이 늦진 않았지만, 모자가 버스에 타니 박수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구, 착해라." 상황도 달랐지만 라벤더 농장에서 늦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아들은 엄청 미안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자리로 갔다. 그 순간 네 명 아주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살짝 신경 쓰였지만, 여행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일행들의 마음도 널널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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