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리베츠 지옥계곡에 가기 전 가이드는 "냄새가 날 거예요. 유황 냄새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모두 다르더라고요. 온천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에요. 우리도 이곳에서 자고 가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운 듯 말했다. 온천 성분 중 한 가지만 가지고 있어도 온천이라고 하는데 노보리베츠의 온천은 9가지 성분을 다 가지고 있어 효능이 아주 좋다고 했다. 도깨비가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는 노보리베츠마을 입구에 서 있는 거인 도깨비가 맘에 들었다. 겨울에는 도깨비 축제도 열린다니 겨울의 노보리베츠 마을도 궁금해졌다. 축제라는 단어는 괜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다리 위에 서서 지옥계곡을 바라보았다. 공사장처럼 보일 거라 했는데 옅은 황갈색의 거대한 바위 사이로 화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내 눈엔 그저 신비로웠다. 푸른 연못을 보고 흰 수염폭포를 보고 지옥계곡을 차례로 보니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바다, 조금만 부지런해도 갈 수 있는 오름, 신비를 품은 곶자왈 등 자연경관에 자부심이 크다. 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사는 나는 말레이시아의 노을 명소 앞에서도 '우리 집에서 보는 노을이 더 예쁜데' 물빛 예쁜 산호섬에서도 '제주에서 맨날 바다 보는데'라며 싱겁게 보았다. 이번엔 달랐다. 항상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어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 대가로 그들이 얻은 아름다운 자연에 경외심이 들었다. 멍하니 있는 나를 남편이 끌었다. 흰수염폭포에서처럼 다리 위에서만 보는 줄 알고 감탄하며 서 있었는데 다들 계곡으로 들어가는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꾸 위험하게 계곡 안으로 들어가려 해서 산책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데크길을 따라 걸었다. 바위산 사이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냄새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신비한 자연의 조화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남편은 절반도 안 가서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다 가지도 않았는데 왜 돌아가. 끝까지 가야지." "가 봐야 똑같아. 봐. 다 이렇게 생겼어." "안 갔는데 어떻게 알아?" 같지 않았다. 산책로 끝에 있는 작은 물웅덩이처럼 보이는 텟센이케(철천지)는 오묘한 푸른빛을 띠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철을 많이 함유한 간헐천이라고 한다. 옅은 황색의 바위 사이로 졸졸 온천수가 흘러나왔다. 펄펄 끓고 있는 물이라는 게 상상이 안 가는 밝은 푸른색의 귀여운 물줄기였다. 만지면 ‘앗, 차가워’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바위 뒤로는 짙은 숲과 맑은 파란 하늘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어떻게 자라는지 신기하게도 화산 바위에 초록 식물이 있었다.
홋카이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금까지와는 달라 보였다. 내 것도 아니면서 제주의 아름다움에 마냥 우쭐했던 내가 갑자기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 같았다. 쫄렸다. 물론 다르다. 홋카이도의 자연은 그것대로 아름답고 제주의 자연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우면서도 그 안에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다. 큰일 났다. 겨우 홋카이도 하나 보고 이렇게 기죽다니. 세상에 아직 못 본 게 얼마나 많은데.
버스로 돌아왔는데 부부 커플이 얼굴이 벌게져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왔다. 분명 산책로에서 우리보다 앞서가는 걸 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버스로 오는 길에 있던 거대 도깨비를 보고 사진도 찍고 왔단다. 아줌마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꽤 먼 거리였는데 아저씨가 무심한 듯 은근히 잘 챙겼다. 좀 더 나이 들면 내 남편도 나를 그렇게 챙길까? 어떻게든 덜 걸으려는 남편과 비교돼서 한마디 했다. "남편은 산책로도 절반만 가려고 하는데, 저 아저씨는 이 땡볕에 도깨비까지 보러 같이 갔다 왔네." "말하지, 나도 도깨비 상까지 같이 갈 수 있었는데." 사실 도깨비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잘도 같이 가겠다. 가서 뭐 하냐고 했겠지. 온천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라지만 난 그냥 그 땡볕에 구경만 하는 여행이 더 좋았다. 그래도 겨울에 도깨비 축제는 보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