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예전에 짐을 싣고 내렸다던 오타루 운하의 옛날 집들과 창고는 이제 레스토랑이나 쇼핑몰로 바뀌었다. 잔잔히 흘러가는 수로의 물을 보며 예전에는 분주했을 그곳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가볍게 산책했다. 오타루 운하 옆에는 졸졸졸 흐르는 귀여운 음수대가 있었는데 남편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꼭 그걸 마셨다. “왜 아무거나 먹어?” 도심에서 수도꼭지를 열지도 않고 그냥 나오는 물을 확인도 안 하고 먹는 남편의 행동이 불편하고 걱정도 돼서 잔소리하듯 말했더니 일본어 표지판을 구글 번역으로 보여줬다. ‘제발 이 물을 마셔주세요.’ 귀여운 번역에 웃음이 나왔다. 햇볕이 강한 오타루 거리를 가이드의 깃발 따라 함께 걸었다.
구도심을 재생한 오타루 거리의 아기자기함이 좋았다. 작은 유리 공방도, 식당도, 전통 있는 과자 가게도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간 오르골당 앞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증기 시계가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칙칙 증기를 뿜고 있었다. 길을 걷던 사람도 신호 기다리던 사람도 다 같이 바라보며 사진 찍는 모습이 왠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게 보였다. 1912년에 지었고 2층까지 있는 건물이라며 오르골당만 봐도 두 시간이 모자랄 거라는 안내를 미리 받았지만, 들어가서 본 오르골당은 상상 이상이었다. 작고 반짝이는 오르골에 눈도 마음도 바빴고 2층은 가보지도 못했다.
볼 땐 예뻐도 돌아가면 종종 애물 덩어리가 되어 기념품은 웬만하면 안 사려고 하는데 오르골은 하나 갖고 싶었다. 내가 오르골을 고르는 것을 보고 남편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고 이 예쁜 물건들은 제법 비쌌고, 남편은 그것의 쓸모가 의아했나 보다. “그걸로 뭐 하게?” “그냥 가지려고. 소리 들으면서 놀려고.” 몇 개만 있으면 맘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기가 쉬운데, 너무 많아서 이걸 고르면 저게 더 예쁘고, 사려고 보면 쓸데없이 커 보이기도 했다. 맘에 딱 들어온 오르골이 하나 있었는데 대포 모양이어서 깜짝 놀라 내려놓았다. 그 예쁜 것이 대포라니, 나는 무기모형을 보며 즐거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 살래.” “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골라봐.” “니가 떨떠름하게 봤잖아.” 실컷 구경하고 못 골라서 못 사는 핑계를 남편에게 돌리고 오르골 가게를 나왔다.
유명한 과자 가게도 가보고 다른 것들도 봐야 했다. 원래 일정은 오타루 거리에서 먹는 점심식사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가이드는 점심을 공항에서 먹자고 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우니 초밥을 먹고 싶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아쉬웠다. 양과자로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줄을 서서 가격에 놀라며 고급진 과자를 사고 캐릭터 과자 가게에서 너무 앙증맞은 쿠키도 샀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거리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붐비는 화과자 가게의 좁은 의자에 앉아 멋없이 커피를 마시고 화과자를 먹으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자유여행으로 실컷 거리를 누비고 작은 식당에 앉아 음식도 먹어야 할 듯했다. 일행 중 어린 친구들은 신나게 구경하는 듯했지만, 대부분은 처음의 신났던 마음과 달리 갈 곳 잃은 중생처럼 헤매고 다녔다. 유리 공예 가게에는 볼 줄 모르는 내 눈에 밋밋하고 멋없어 보이는 접시들이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뽐내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작품이었다. 맘에 드는 컵이 하나 있었다. 오르골을 못 사서 괜히 심술이 난 나는 그 컵을 사겠다고 남편을 떠봤다. 남편도 말로만 사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안 살 걸 알고 있었다.
떠나려니 아쉬웠다.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증기 시계도 좋았고 거리의 가로등에 귀엽게 매달아 놓은 유리풍경도 좋았다.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미련만 잔뜩 남아서 버스로 갔다. 아무래도 오르골을 못 사서 그런 것 같다. 돌아가면 못 산 오르골이 자꾸 생각날 것 같았다. 언제 또 증기 시계탑을 보고 오르골당을 가볼 수 있을지. 마지막이라면 왜 그렇게 서운한지. “다음엔 어디 갈까?”라는 물음으로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