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보여줄까

샤먼여행 유창루

by 여름햇살

토루는 흙을 쌓아 올려 만든 건물로 현대의 아파트로 볼 수 있다. 이주민들이 성안에 모여 살며 공동체 생활을 했고 외부로부터의 방어에 적합하게 지어졌다. 우리는 그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토루인 유창루를 방문했는데 그곳은 관광지이면서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유창루 가는 길 입구에 과일가게며 소규모의 음식점들이 작은 재래시장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여기서 가이드는 유자즙을 사서 나눠주었는데 유자 모양이 우리의 댕유지처럼 생겼지만 맛은 다르다. 댕유지는 쌉쌀하고 씁쓸하며 향이 있지만 이건 달콤하면서 가볍고 산뜻한 맛이었다.


거대한 규모의 토루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잠깐 들었다. 한눈에 다 보이는 원안에서 40여분의 시간이 주어져 놀거리를 찾아야 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남편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걸었다. 1층은 대부분 상가로 잡화며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일행 부부가 가운데에 있는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길래 따라가 보았더니 불상이 있었다. 부부는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평온하고 온화해 보이는 그들의 마음 어떤 부분이 타지의 상단에 엎드려 절하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기웃거리는 동안 남편이 잠시 사라졌다 나타났는데 손에 작은 봉투가 들려있었다. 냉장고 자석을 사고 활짝 웃는 50살 남편의 모습은 귀엽다고 해야 할지. 남편의 뒤를 따라온 현지아줌마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폰을 주라고 했다. 남편이 냉장고 자석을 샀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단다. 그곳에서 허접한 냉장고 자석을 사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기에 속으로 냉장고자석 사는 호구 녀석에게 사진도 팔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뭐든 비뚤게 보려고 하면 그렇게 보이는 법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포즈를 요구하며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어 주었다. 평소 뻣뻣하게 서서 찍거나 한 팔을 길게 내밀어 찍는 셀카 외에는 어떤 포즈도 못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그 상황에서 거절도 못한 남편은 그녀가 시키는 걸 다 했다. 덕분에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고 그냥 막 찍는 게 아닌 듯 사진도 작품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또 다른 현지인이 우리의 사진을 찍었지만 한 마디도 못하고 얌전히 찍혔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까지가 호의일까 생각하는데 냉장고 자석 그녀가 역시나 마지막엔 토루 안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얼마를 주면 사는 곳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인류학자도 아니고 주거지 전문가도 아니고 남의 사는 모습을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아 정중히 거절하고 토루를 나왔다. 그들 나름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토루밖에서 일행들을 기다리며 남편과 대화하는데 냉장고자석 그녀 옆에서 초상권도 무시하고 맘대로 우리를 찍던 현지인이 사진을 현상해서 다급하게 가지고 나왔다. 80년대 초에 봤을 법한 종이에 붙인 제법 큰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돈 천 원을 달라고 했다. 집에 가면 또 잡동사니가 될 터이지만 사진이 제법 잘 나와서 맘에 들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보통 10~20위안을 받는데 우리가 토루에서 나가니 어차피 못 쓰게 된 사진 천 원이라도 받고 팔자는 마음인 듯했다. 천 원에 들고 온 그 사진도 지금은 여행의 추억으로 탁자 위에 잘 놓였다. 함부로 찍고 아무렇게나 파는 방식이 어이없었지만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은 해외에 가면 냉장고자석을 기념으로 사는 걸 좋아한다. 내 눈에는 참 쓸모없어 보이는데 그걸 수집하겠다니 참 나랑 성향이 다르긴 하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모으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도 흔한 냉장고 자석이라 다행이다. 값비싼 희귀 물품을 모으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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