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의 그들은 귀족처럼

샤먼여행 야경유람선

by 여름햇살

샤먼의 거리는 밤이면 건물들이 하나씩 예쁜 불빛을 내며 마치 동화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버스로 이동하던 중 카메라를 열심히 누르다 피식 웃음이 났다. 건물 보며 사진 찍는 사람은 관광객이다. 현지인들은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저게 뭐라고.' 우리도 제주에 있을 때 관광객들이 건물을 찍고 있으면 '무슨 일이 났나?' 하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보게 된다.


야경 유람선 투어를 가는 길이었다. 배에 앉아서 불빛 반짝이는 예쁜 도시를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선착장에서 본 유람선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지만 좋은 자리에 앉아서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앞으로 걸어갔다. 일층에 제법 편한 자리들이 있었고 한쪽 옆에는 테이블이 있는 자리도 있어 마음이 끌렸지만 가보지 않은 이층은 어떤지 궁금했다. 보통 익숙한 가이드들은 미리 상황을 알려주는데 샤먼이 인기관광지가 되면서 급하게 투입됐다는 우리 가이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빡빡한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기에 바빠 본인도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2층은 그냥 갑판이었다. 그래도 전망을 보려면 그곳에 있어야 했다. 실망하면서 보니 2층에 계단이 하나 더 나 있었다. 계단을 올랐다. 평소 사다리계단은 무서워서 잘 오르지도 않는데 좋은 자리 차지할 생각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쁘게 세팅된 테이블이 있었고 호텔직원 같은 이들이 친절한 웃음을 띠며 서 있었다. 일찍 올라온 행운만으로 보기에 아래쪽의 그곳과는 너무 차이가 커 보였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앉아도 되는지 한국말로 물었다. 중국말로 돌아오는 대답은 '된다'는 것 같은데 너무 큰 행운 같아 의아했다. 뒤따라 온 우리 일행들이 보였다. 그들의 말을 정리해 보니 추가금액을 내서 이용하는 자리었다. '이런, 2인석 기준 200위안.' 우리 돈으로 4만 4천 원 - 샤먼에 있는 동안 우리는 10위안을 2200원으로 계산했다- 잠시 갈등했다. 고깃배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그 야경유람선은 50달러짜리었다. 당시 환율로 7만 5천 원. 거기다 4만 4천 원을 더 내려니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밤이었다. 우리에게 위안이 넉넉했다면 탕진하는 기분으로 소비했겠지만 겨우 100위안 정도 남아있었다. 루저가 된 기분으로 내려오니 2층 갑판에 사람들이 하나 둘 기대어 서 있었다. 실망감이 너무 컸던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창가 자리에 앉아도 뿌연 창밖으로 구분도 안 되는 어질거리는 불빛만 볼 수 있었다. 목적지는 없고 야경이 목적인데 말이다.


사람 가득한 유람선에 앉아 한 시간 넘게 있어야 하다니. 야경투어 가는 길에 지나친 중산로가 생각났다.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 가득한 공간에 고개를 이리저리 빼며 손을 뻗어가며 사진 찍으며 보는 야경이 아니라 먹거리가 있고 신기한 잡화가 있는 북적이는 그 거리였다. 그 거리는 구경도 못하고 열심히 걸어 지나쳤는데 전망도 못 보는 야경 유람선 투어라니 한심했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 야경이라도 봐야지.' 다시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배 가장자리는 이미 다 차 있어 기댈 곳도 없고 야경도 남의 어깨너머로 봐야 했다. 사다리 계단 틈으로 보이는 3층 테이블의 그들은 귀족처럼 보였다. 우리 일행도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잘했다. 잘했어. 여기 서도 충분히 보이는 걸 4만 원을 더 주면서 거기 앉아서 뭐 해. 잘 한 결정이야.' 이건 평소 여행방식과는 다른 행동이었다. 여행 가면 간 김에 다 해보고 다 먹어보려고 한다. '한 건 후회 없지만 안 한건 후회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똑같은 배에 좀 편히 앉아서 가는 값 치고는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잖아'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리고 정말 괜찮았다. 그런데 왜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내 기분은 가난할까.

손가락이 아프도록 나중에 보면 똑같은 야경을 찍다 보니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했다. 3층의 그들도 하나 둘 내려왔다. 3층에 있던 일행은 부부와 30대 아들팀이었다. 아들이 아주 뿌듯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보면 정말 답답하겠네. 어머니 최고예요."

우리는 부부만 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루 종일 관광하고 지친 몸으로 쉬지도 못하고 빈부의 격차를 느끼며 서 있어야 했던 그 야경 유람선 투어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다시 또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여전히 모르겠다. 앉아서 즐기는 것도 한 번씩 기우뚱거리는 배를 따라 균형 잡으려고 애쓰며 서서 야경을 보는 것도 다 괜찮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그래도 한 번은 서서 봤으니 다음엔 앉아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4만 원 때문에 가성비 운운하며 시무룩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만약 그 배에 3층의 멋진 좌석이 없었다면 그 야경크루즈투어는 그동안 보아 온 많은 야경투어에 가려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비싸다고 구시렁대면서 3층자리에 앉지 못해서 아쉬웠던 마음 때문에 더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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