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와 계란말이

음식과 추억

by 여름햇살

"얘들아, 우리 집에 모여! 만두 빚어먹자."

아이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오래도록 함께하는 모임이 있다. 멤버 중 더러는 빠지고 더러는 들어오며 지금의 멤버로 고정되었다. 모두 너무 착한 이들이라 함께 있으면 나도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다른 이들과 섞여있으면 야무지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이들과 있으면 왠지 편하다.


모임멤버 중 큰언니의 집에서 만두를 빚어 먹었다. 집에서 만든 만두는 나에게 아련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큰아이를 가졌을 때 직장상사의 아기 돌잔치에 갔다가 직접 빚은 손만두를 처음 먹어 보고 깜짝 놀랐다. 만두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은 몰랐다. 손만두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당시 인천에 살던 큰언니가 만두를 빚어 보내왔다. 택배로 제주에 오는 동안 만두는 서로 엉겨 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고 먹기에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임신 중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 하면 손만두가 떠오른다. 손도 느린 우리 언니가 얼마나 힘들게 정성껏 빚었을지도 이제야 짐작이 간다. 오빠 먼저 결혼해야 막내인 나도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부모님 고집에 아이가 생겨도 결혼식을 못 올리고 겨우 동거만 허락받은 결혼 초기 나는 좀 움츠러들어 있었다. 요즘엔 결혼 전 동거도 당연한 듯 인식되고 형제자매 간에 순서 같은 건 따지지도 않지만 그때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한밤중에 남편에게 먹고 싶은 걸 사 오라고 하는 호사는 누려보지도 못했다.


맛집사장님인 멤버언니가 전날 만두소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 열심히 치댄 만두소를 만두피에 넣고 접는 법을 알려주었다. 만두소를 듬뿍 넣고 계란 흰자를 발라 접으면 잘 붙는다. 명절이나 제사도 이렇게 모두 모여 손을 보태면 더 즐겁고 남의 집 귀한 딸인 수많은 며느리들이 덜 서러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며느리여서 좀 서러웠다. 시집 식구들이 나를 특별히 나쁘게 대한 것도 아니고 나쁜 마음으로 그러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하던 대로, 살던 대로 했을 뿐 새 식구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것이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까지 온 가족이 다 같이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 명절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텐데. 이제 모이는 일도 점점 사치가 될지도 모르지만.


수납장을 정리하다가 딸이 초등학교 때 썼던 글을 발견했다.


-우리는 설날이 되니까 신났는데 엄마는 일만 했다. 아침에 할아버지들이 술을 드시면서 음식도 같이 드셔서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또 바로 아침을 먹어서 설거지하고 조금 쉬면서 놀다가 점심 먹고 설거지하다가 세배를 하고 설거지를 마저 했다-


그래도 설거지가 제일 편했다. 마음이 문제다. 누군가의 수고가 필요한 일에 강요된 수고로 나머지 사람들만 즐거운 건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나는 지금 괜찮았던 게 안 괜찮아지는 오십 살이다.

모양이 제각각 비뚤었지만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빚은 만두는 최고였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무는데 가슴속에서 뭉클하게 올라오는 뭔가가 있었다. 결혼초 아무것도 모르는 어렸던 나, 큰언니가 보내줬던 여기저기 터진 만두의 기억. 가진 것 없이 초라했던 신혼시절 아련함과 움츠림을 함께 떠올리던 만두의 기억이 이제는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바뀌었다.


우리끼리 맛있게 먹으며 즐기자고 모인 자리는 더없이 편했다. 너무 맛있는 만두를 목구멍이 터질 때까지 집어넣었다. 이 날 먹은 만두는 감동이었고 내 만두의 기억위에 좋은 추억이 살포시 얹혀졌다.

많이 배운 사람도 없고 책 한 권 읽는 이 없지만 그녀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삶의 방향이 절로 잡힌다. 마음이 바른 사람들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면서 삶을 녹여낸 50대 그녀들이 하는 말은 그대로 철학이다. 예전에는 인복 좋다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게 어떤 건지 몰랐는데 이젠 나도 안다. 그녀들이 내 옆에 있어 나는 인복이 좋은 사람이다.


멤버 큰언니를 닮아 대학생인 그녀의 딸, 아들도 자취방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종종 음식을 해 먹는단다. 요즘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다니 신기하다.


새해 첫날이라고 큰딸이 친구랑 먹으려고 차린 밥상 사진을 보내왔다. 알록달록 예쁜 떡국과 고기반찬 구운 감자, 김치, 계란말이가 있었다. 맛살을 넣은 계란말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결혼 전에 음식을 해 본 적도 없고 큰아이를 낳고 바로 생계형 맞벌이를 한 나는 음식을 잘할 줄 몰랐다. 채소를 다듬을 줄도 몰랐고 칼은 무서웠다. 계란을 풀어서 얇게 펼치고 길쭉한 맛살을 넣어 잘 말고 가위로 잘라내면 아이도 남편도 잘 먹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급식처럼 야채를 넣은 계란말이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몸에 좋은 야채를 잘게 썰어 만든 계란말이는 간도 잘 안 맞고 말 때도 잘 터졌다. 남편은 오십 살에도 맛살계란말이를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크고는 그런 계란말이를 하면 아빠반찬만 했다고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면서 자기는 맛살 계란말이를 하다니. 멤버 큰언니네 아이들은 친구 불러 동그랑땡이나 만두 같은 걸 해 먹는다던데. 부모를 닮는 것도 보고 배우는 것도 맞나 보다. 나도 좋은 거 많이 해 줬으면 아이의 밥상이 달라졌을까 반성하는 마음이 들지만 그럭저럭 다 괜찮다. 이제 맛살계란말이는 삶에 서툴고 바둥거리며 살던 시절의 반찬에서 아이의 밥상에 오른 귀엽고 사랑스러운 추억의 반찬이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맛살을 넣은 계란말이를 하고 모임 큰 언니가 싸 준 만두를 넣고 국 끓여 집밥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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