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th 올드 미션 ( Old Mission)
미션 산타 바바라 (Santa Barbara Mission)는 산타 바바라 미션 (Santa Barbara Mission)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 (Santa Barbara) 에 1786 년 12 월 4 일 세인트 바바라 축제날(Saint Barbara), 퍼민 라우센 신부(Padre Fermin Lasuen)가 이지역 토착 원주민인 추마시 바바레노(Chumash-Barbareno)부족의 종교 개종을 위한 열 번째 미션으로 설립하였다. 현재 미션의 이름은 산타 바바라시와 산타 바바라 카운티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미션 부지는 태평양과 산타 이네즈 산맥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창립 이래 프란체스코 수사회의 지도 아래 남아있는 유일한 미션으로 오늘날 로스 앤젤레스 대교구의 교구 교회다.
초기 선교사들은 처음 몇 년 동안 세 개의 다른 예배당을 세웠는데, 현재의 예배당보다는 컸지만, 남아있지 않고, 1812 년 12 월 21 일 산타 바바라 지진이 발생한 직후에 재건한 건물이 현재 남아있는 미션의 모습이다. 지진이 잦은 이곳은 1820 년 6 월 29 일 또 다시 지진으로 인해 탑이 크게 손상되었으나 재건되었고, 1920년까지 잦은 재해로 인해 보수가 잦았으나 예배당 내부의 모습은 1820 년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로만식과 스페인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로 캘리포니아 미션 중 가장 멋있다고 하여 '미션의 여왕(Queen of the Mission for its graceful beauty)'이라고 불린다.
프란치스코회의 지시에 따라 추마시 인디언들 (Chumash Indians) 의 노동에 의해 건설된 미션은 수자원 공급에 발전된 수처리 시스템으로 오늘날 까지도 그 자료가 귀중한 유산으로 남았다. 인공적으로 만든 2곳의 저수지에서는 미션에서 생활하던 많은 인원들에게 식수와 정원의 많은 식물들과 과수 작물, 세탁장까지 필요한 물공급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였다. 미션과 항구사이, 그러니까 미션에서 남동쪽으로 약 1 마일 정도 떨어진 엘 프레시디오(El Presidio Reál de Santa Bárbara / 스페인어로 군사기지)가 자리하는데 해변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와 뒤로는 높은 산세 등 매우 윤택한 평야등이 '산타 바바라' 라는 도시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미션의 흔적으로 무너진 담벽, 도자기 가마, 수로 시스템 및 가드 하우스의 잔해는 지방 자치 단체가 소유한 미션 역사 공원 (Mission Historical Park)으로 남아 보존이 되고 있다.
1700 년대 스페인의 정복자들에게 캘리포니아(멕시코 알타 캘리포니아)가 식민지화 되기 전 부터 북부 캘리포니아는 러시아와 영국에 의해 남캘리포니아는 스페인, 포르투칼,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의 접전국이 되기도 하였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는 의회가 1833 년 8 월 17 일 캘리포니아 선교의 세속화에 관한 법안을 통과 한 후 나르시소 두란 신부는 스페인 기독교 프란치스코 회 본부를 산타 바바라로 이관하여 산타 바바라 미션을 통해 1830년 대까지 21개의 설립된 미션에 흩어져 있던 약 3,000 개의 원본 문서를 보관했다.
박물관에는 미션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연구기관으로 산타 바바라 미션- 아카이브 도서관이 있으며, 캘리포니아의 미션 계획을 세웠던 후니페로 세라 (Junipero Serra) 신부의 소장품들과 사도들의 교육과정, 초기 캘리포니아의 저술, 지도 등 애리조나 토호노 오우드햄(Tohono O'oodham Indians of Arizona)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자료까지 소장, 보관되어 있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있다.
스페인 프란체스칸의 중심지로서 미션은 교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미션이 세속화된 후로도 이곳은 1854년 부터 사도들을 위한 대학으로 공인되었다가 1년후에는 이곳에 속한 모든 신도들을 위한 대학으로 성장하여, 오늘날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Berkeley)에 프란시스칸 스쿨 오브 디올로지Franciscan School of Theology)로 정착하게 되었다.
미션의 입구에는 프란체스칸(Franciscan)수도사로 캘리포니아 미션을 위해 헌신한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1713-1784) 신부의 동상이 있고, 미션의 기프트 샵을 통해 들어가면 오른쪽으로는 경건한 예배당과 정원이 중앙에 있다. 미션의 건축은 스페인 건축을 따라서 커다란 중정이 있다. 이 정원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이 식용하던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과 장미꽃, 팜트리와 선인장들을 정성스럽게 가꾸었다고 한다. 미션의 박물관에는 미션이 지어질 당시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식용하고 있던 작물들과 그들의 식생활이 기록되어 있는데, 스페인 수사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많은 걸 가지고 왔다.
무화과, 포도나무, 레몬, 콩작물 등등을...., 수렵과 채취에만 의존하던 원주민들에게 작물의 재배와 보관법까지 알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생활 부분이 개선이 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것이 유럽의 풍토병과 세균까지도 가지고 오게 되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많은 목슴을 앗아가기도 했다.
미션은 선교사 묘지와 4,000여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묘지가 있으며 두개의 종탑이 우뚝 선 예배당, 회랑이 우아한 건축물, 미션 앞의 넓은 광장 등이 전형적인 미션 건축 스타일로 독특하면서 이국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했다.
산타 바바라는 스페인 풍의 도시로 해변이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와 일찌감치 미션으로 인하여 도시가 균형있게 형성이 되어 발전하였고, 주위에는 개성있는 와이너리도 많다.
미 서부의 미션활동에 대한 전시관에는 당시에 실크로드를 통해 들여 온 비단으로 만든 스페인에서 가져온 수사의 제의와 미사에 필요했던 사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18세기의 종교적 화려움을 볼 수 있어서 유럽을 지배하던 종교에 대해 놀라움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