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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미션 - 샌 부에나벤츄라

9th 올드 미션으로의 여행

b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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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미션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미국내에서도 오래된 건축물중의 하나로 미국민들에겐 커다란 유산이다.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 캘리포니아 미션들은 건물 외관이 같은 형식의 아니고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로 지어졌지만 공통점으로 스페인의 건축양식인 성당앞의 광장과 분수를 고수하여 미션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번에 찾은 벤츄라시의 샌 부에나벤츄라 미션(San Buenaventura Mission)은 1782년 3월 31일 부활절에 *성 후니페로 세라 (Junipero Serra)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캘리포니아 미션 조직중에 9 번째로 설립되었고 세라신부가 세운 마지막 미션이기도 하다. 설립 시부터 부책임자였던 페드로 베니또 캄본(Pedro Benito Cambon) 신부는 세라신부의 뒤를 이어 이 미션 책임을 맡았다. 그 당시 이 지역에는 추마쉬(Chumash)족 원주민들이 터를 잡고 있었으나, 많은 원주민들이 1782년에서 1817년 사이에 생활터전을 그들의 마을에서 미션으로 옮겼다.

샌 부에나벤츄라미션은 벤츄라 시(Ventura City)의 중심거리인 메인 스트리트 (Main Street) 에 있고, 벤츄라시는 미션이 이곳에 설립되면서 미션을 중심으로 시가가 형성되며 발전된 도시로, 시청사 앞에 도시의 시초가 된 미션의 수장인 세라 신부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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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본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교구(Parish)사무실, 뒷쪽에 Holy Cross 학교, 오른쪽에 정원과 사제관, 박물관, 성물센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모든 미션은 각자의 박물관이 있어 미션의 설립 과정과 미션이 정착하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교화와 미사에 필요했던 성물과 사제들의 의상 등 지역의 형성과 발전에 미션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것과 원주민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생활 도구까지 잘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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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설립 초창기에 사용하던 스페인에서 가져왔다는 고해소도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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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건물에 숫자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은 거의가 주소인데 미션 예배당의 정문 위에는 1782 라는 숫자는 주소가 아니고 미션을 설립한 해이다.

성당 건물 옆에 있는 2개의 높은 키의 소나무(Star Pine Tree) 는 설립 당시에 배의 돛대로 쓰려고 심겨진 나무라고 한다. 유럽인들의 진취적인 생각과 안목이라고 하기엔 그들의 탐험적 기질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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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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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건축된 성당의 내부는 다른 미션처럼 역시 길이와 천정이 높다. 그에 비해 폭은 좁다. 벽면이나 다른 부분은 보수를 하기도 했는데, 천정은 설립된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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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의 중앙에 성 보나벤쳐(보나벤츄라) 성인상이 모셔져 있다.

[보나벤츄라 (Sanctus Bonaventura 1218 ~ 1274) 는 로마카톨릭의 중세 시대 가장 뛰어난 신학자이자 사상가이며 성인 중 한사람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 는데, 나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알겠는데 성 보나벤츄라는 여기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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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있는 스페인 풍의 분수대와 뒤 부분의 '은혜의 성모' 상에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놓아놓은 꽃들과 그들의 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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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측면 출입구. 성모상 좌,우로 경사가 진 팔(八)자 선은 미션을 중심으로 이 지역 양쪽을 흐르는 벤츄라 강과 산타 클라라 강(Santa Clara River)을 나타내고, 그 위 사다리꼴 모양은 미션뒤에 있는 설퍼산(Sulphur Mt) 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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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의 뒤에는 현대식 건물로 홀리 크로스( Holy Cross)라는 학교이고, 학교로 오르는 계단옆으로 물을 저장하던 탱크가 있다. 미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벤츄라 강(Ventura River) 에서 7마일 길이의 수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영국 탐험가 죠지 뱅쿠버(George Vancouver)의 기록에 따르면, 긴 길이의 수로가 있어 풍부한 물 공급으로 미션은 과수원과 정원을 가꿀수 있었다고 기록했으며 현재 수로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유적지로 등록 관리되고 있다.

수로를 통해 온 물을 이 탱크에서 침전시켜 미션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처음 지었던 미션과 그에 따른 모든 시설은 182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뱅쿠버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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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초기의 선교사들은 미션 설립 후, 생활을 위하여 미션에 함께 사는 원주민들과 농업과 목장을 운영하였다. 벤츄라 미션 내 가축으로는 소, 말, 양, 돼지등을 길렀고, 1818년에는 가축의 수가 3만 5천이 넘었다. 미션 주변의 땅들은 비옥하여 농작물들이 잘 자랐는데 스페인 수사들이 가져온 올리브, 레몬, 포도, 무화과, 자두, 오렌지, 보리, 옥수수 등을 재배하여 농작물이 없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수럽과 채취로만 해결했던 식량부족의 해소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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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에서의 자급자족의 생활을 보여주는 올리브 기름을 짜는 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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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앞 광장에 초기 선교사들과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문명을 가르치던 생활상을 벽화로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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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미션의 역사를 보면 1812년 수차례의 지진과 해일로 신부, 선교사, 원주민들은 미션을 나와 내륙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또, 그후에는 해적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하여 성당의 성물들을 가지고 피신하기도 한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정부는 1834년에 세속화법을 제정하고, 신부와 선교사들에게 미션관리권을 박탈하였다.

1845년에는 미션을 개인에게 임대해 주었고 후에는 불법으로 임대해 준 사람중에 한명인 아나즈(Arnaz) 라는 이에게 미션을 팔았다.


그러나 1848 년 멕시코는 미국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미션은 다시 미국소유가 되었고, 그당시 미션의 주교인 호세 사독 알메마니(Jose Sadoc Alemany) 주교는 미션에 소속되었던 예배당건물과 거주건물, 과수원 등을 교회에 돌려달라고 미국 정부에 청원하였다.

1862년 5월 23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이 청원을 받아들이는 포고령에 서명함으로써 미션의 모든 시설들은 다시 미션의 재산으로 환원되었다.


* 2015년 9월 23일 미국을 사목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워싱턴 D.C.바실리카 국립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2015-09-23)
교황은 세라 성인에 대해 "미국 땅에 복음의 기쁨을 증거했다"며 "몸소 경험한 하느님의 자비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기 위해 안락한 집 밖으로 나온 대표적 본보기"라고 말했다.
스페인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는 1769년 미국 샌디에고에 첫발을 내딛은 후,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21개의 선교지를 세우면서 원주민들에게 복음과 문명을 전했다.
세라 신부는 1784년 선종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8년 복자로 선포됐었다.
하지만, 선교 과정에서 원주민 수만 명이 유럽발 전염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숨진 것이 전해지면서 아메리카 원주민 후손들이 시성 추진에 강한 반발을 샀으나, 2015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후니페로 세라 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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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있는 날은 성당의 옆문을 열어놓으나 관광객들은 기프트 스토어를 통해 입장을 한다. 미션입장료는

성인 각각 미션마다 다르다. 성인 기준으로 $5.00 , 시니어와 군인, 12세 이하 어린이는 할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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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을 찾아가는 길에는 101번이나 5번 등 프리웨이 뿐만 아니라 주로 해안도로 곳곳에서 'El Camino Real' 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서 있는 종을 볼 수 있다. 이 종들은 1683년부터 1834년까지 당시 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일대를 다스렸던 스페인의 종교적 전초기지로 세웠던 미션(Mission)과 요새(Presidios), 원주민 부락들(Pueblos)을 연결하였던 '왕의 도로'를 표식하는 것이다.

샌 디에고부터 샌 프란시스코까지의 21개 미션들은 총 600마일의 거리로 미션은 곳곳에 대략 30마일의 거리를 두고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 거리는 미션에서 미션으로 말을 타고 하루를 달릴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한 것이라고 한다.

미션이 차례로 지어진 초창기에는 도로의 표식을 위해 겨자씨를 뿌려 노란꽃들로 만발했던 이 길에 1906년 450개의 종들이 들어섰다. 101번 프리웨이는 원래의 엘 카미노 레알을 상당부분 따라 건설하였다는데, 1902년 ‘LA 여성 클럽’이 원래의 왕의 길에 표시를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1906년 '엘 카미노 레알 협회'가 설립되어진 그 해에 '프란시스코의 지팡이'로 명명된 양치기용 지팡이에 종을 달아 1마일마다 세우기로 하여 450개가 되었다. 한때는 도둑들의 손을 타 그 수가 매우 줄었지만, 지금은 밑받침을 잘 세워 도난은 줄었다고 한다.

종의 제작사는 "캘리포니아 벨 컴퍼니(California Bell Company)"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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