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삶 ep.20 맑음

by 정여름


SNS에서 밝은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던 그녀가 성폭행 트라우마가 있단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의 그녀는 씩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에 눈물이 맺힌 듯 보였다. 본인의 상처를 인정하고, 드러내고, 나아갈 방향을 찾아 실천하는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용기를 나누어 받았다. 날씨가 아직 삼한사온인데, 그녀의 영상을 보는 시간 동안 따스한 봄을 미리 느껴버렸다. 이내 영상에 달리는 수많은 악플들을 본 그녀는 마음이 아픈 분들이 많은 듯하여 속상하다며, 본인은 정말 괜찮으니 당신도 괜찮아지길 바란다고, 마음만 열고 나서기만 하면 세상은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들이 많다는 글을 써 내렸다.


아, 내가 느낀 봄이 정말 봄이 맞았구나. 그녀가 보여준 봄은 정말 따스했단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글이었다. 그러다 올해 세운 계획 중 하나가 떠올랐다. 자꾸만 혼자 하는 것들이 익숙해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는 발자국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사적인 약속을 잡아 사람들을 만나기로 계획했다. 핑계를 대며 오랜 시간을 미뤄왔던 탓에 누구부터 만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악플을 달진 않았지만 마음을 열고 나가지 못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의 글에 제발 저려 계획을 잘 시행하고 있는지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 아, 그래서 다음 달엔 또 누굴 만나지?



사람들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모르는 사람에게 길에서 폭언을 당한 경험이 있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대중교통을 한동안 타지 못했다.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자차로 이동하는 게 편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상처는 아문다지만, 그렇지 못했다. 깊은 곳에 숨겨놔, 혹은 상처를 다른 것으로 가려 보이지 않게 했을 뿐 상처는 흉터가 되었다. 사회에서 나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 그리고 아팠던 기억을 다시 되새긴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묵히 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으니, 당신도 괜찮길 바란다는 말이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당장 연애만 해도,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대다수가 실패했던 연애의 경험을 가지고 오는데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보다 성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흔쾌히 괜찮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그러기에 너무 부족한걸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싶다. 굳이 나까지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냥 그대로 그저 그런 나지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괜찮지 않은 날도 괜찮지 않은 날대로 괜찮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대로 괜찮고, 흐린 날은 흐린 날 대로 괜찮은 것처럼 말이다. 매일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꽤 괜찮아졌다. 당신도 괜찮을 거라고 멀리서나마 외쳐본다. 아니, 지금도 괜찮다고.


맑은 그녀에게 얻은 따스한 봄을 함께 누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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