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어쩌다가' 그랬냐고요, 네, 저도 그것이 참 궁금합니다
2024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좋아하는 마음엔 실패가 없지> 의 저자 장참미 작가님과 함께 창원 '오누이 북앤샵'에서 반년 간 글쓰기 모임 활동을 이어간 적 있습니다. 당시 모임에 제출했던 글 중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몸이 자신에게 복수를 한다고 느낀 적 있는가?
말 그대로다. 몸이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지는 꽤 되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조금이라도 무리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엔 귀신같이 입안에 구내염이 생긴다거나, 어느때고 위장에 음식물을 쏟아 부어도 묵묵히 소화를 해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조금만 과식을 한다든지, 밤중에 찾아온 식욕을 이기지 못해 야식을 배달해 먹기라도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김없이 더부룩한 속쓰림이 찾아온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마치 몸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선전포고라도 한 것처럼.
한달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양치를 하던 중 혀를 너무 깊게 닦았는지 헛구역질이 욱 하고 올라왔다. 흔히들 그렇듯.
문제는, 반사적으로 등에 힘이 들어간 바로 그때, 허리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마어마한 고통이 느껴졌다는 거다. 팽팽한 실이 탁, 하고 끊기듯 허리뼈의 이음새가 위아래로 벌어진 것 같았다. 허리가 분질러지다, 내지 두동강나다 따위의 단어들이 눈앞에 떠올랐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찔한 고통에 나는 그만 왼손에 양치컵을 그리고 오른손에 칫솔을 든 채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시각적으로 묘사해보자면 딱 유명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주인공이 필살기 ‘에네르기파’를 내 척추에 대고 직격으로 발사한 느낌이랄까. 너무 아프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기적대며 화장실을 나오자, 고통은 그나마 최소한 견딜 수는 있을 수준으로 희석돼 있었다. 그러니까 최소한 구부정하게 서서 주먹으로 허리를 통통 두드리는 나를 두고 ‘할매’라고 놀리는 동료 직원에게 자조적인 농담을 받아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는 얘기다. 그날 이후 한동안 기침이 나오거나 양치를 할 때 등근육에 갑작스레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유튜브에서 허리에 좋다는 각종 스트레칭도 틈틈이 했다. 다행히 고통은 차차 줄어들었다. 우습게도 여유가 될 때마다 스쿼트를 했더니 아프기 전보다 체력도 좋아진 것 같고, 뭔가 허벅지 근육도 단단해진 것 같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버금가는 긍정 마인드로 무장한 나는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야, 따위의 생각을 하며 모든 걸 낙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고통이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도 모른 채.
‘끔찍했던 그때 그 화장실 사건’이 서서히 잊혀져가던 때였다. 그것은 여느 일상처럼 특별할 것 없던 날, 다시금 무참히 찾아왔다. 강아지용 장난감을 던지기 위해 허리에 힘껏 반동을 싣고 튀어오르던 참이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고통이 허리를 거세게 강타했다. 나는 꼬옥! 하는 어딘가 닭 울음소리 같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떠는 와중에, 고통보다 더 큰 억울함이 찾아들었다. ‘대체 왜? 한동안 멀쩡했잖아! 내가 스트레칭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나한테 왜 이래!’ 눈물을 삼키며 내 몸을 매섭게 다그쳤으나 나의 적대적인 동반자는 팔짱을 낀 채 말없이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마치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라는 듯.
다음 날 검색을 통해 찾아간 S정형외과는 하얗고 깨끗하고 눈부셨다. 후기에서 본대로 직원들도 친절했다.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하품과 함께 길고 지루한 대기시간을 견뎠다. 허리 통증은 여전히 끔찍했으므로, 나는 누군가 나를 호명하거나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검사실에서 또다른 검사실로 이동할 때마다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끙 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걸어야 했다.
음, 생각보다 곧고 정갈한데? 그게 28년 만에 처음 본 내 척추 사진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시선에서 볼 때 내 5번 척추는 분명 문제가 있었으므로 나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얌전히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흐음, 척추디스크 증상이 약간 있네요.” 불행 중 다행인 얘기였지만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든 건 왜일까. 약간, 약간이라니요, 저 진짜 기절할 만큼 아팠는데요?
아무튼 나이가 젊으니 주사만 맞고도 금방 나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었다. 등에 무려 네 대나 되는 주사를 맞는데다 젊은 남자 간호사분 앞에서 엉덩이를 절반쯤 깐 채로 누워있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곧 굉장히 창피하고 서러운 기분이 되었다. 어쨌거나 외간남자 앞에서 엉덩이를 내놓고도 사적인 궁금증은 풀어야 했기에 일반 주사와 척추 주사기는 뭐가 다른지 꿋꿋히 질문했다. 그는 척추 주사기가 우리가 아는 평범한 주사기보다 좀 더 길쭉하다고 했다. 길다란 막대들을 척추에 꽂은 채 죽은 듯 아래를 보고 누워 있으니 마치 내 등에 곤충 다리 두 쌍이 돋아난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소름 돋고 이상한 감각이었다.
주사 다음으로는 허리 찜질과 전기 마사지가 이어졌다. 뜨끈한 매트 위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돈을 내고도 어쩐지 황송한 기분이 들었다. 물리치료사분에게 간단한 마사지를 받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날의 치료는 겨우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노곤노곤한 몸과 마음을 침대에 뉘었다. 샤워는 4시간 뒤에나 할 수 있었다. 씻지도 못한 몸으로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긴장이 풀리자 앞날에 대한 걱정이 슬그머니 찾아들었다. 당장 3개월 뒤 호주로 떠나야 하는데 어떡하지. 가자마자 육체노동을 시작할 수도 있고, 또 허리디스크는 재발도 쉽다는데 ⋯. 그런 생각에 계속해서 몸을 뒤척였다. 약 기운과 생리 직전의 호르몬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서러움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왜 이렇게 뭐 하나 쉽지 않은지, 그리고 나는 왜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는지, 왜 진작 조금 더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하지 않았는지, 그제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몸의 복수극은 성공적이었다.
고백하자면, 사실 연초부터 나는 말그대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레 눈가가 짓무르고 허옇게 터서 안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충치를 방치한 대가로 삼십 만원을 잃고, 어느 날은 감기에 시달리고, 어느 날은 두통을 앓고, 어느 날은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그 다음 날은 목이 아픈 식이었다. 그런데 하다못해 이제는 허리디스크라니. 아무리 새해 액땜이라 쳐도 너무한 수준 아닌가. 남들이 헬스니 뭐니 하며 열심히 근육을 가꿀 때 침대에 착 붙어 살았던 게 화근이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가끔씩 스트레칭을 하거나 밖에 나가서 달리는 것 외에 즐겨하는 운동이라곤 전무했다. 잘 먹고 잘 자는 편이었지만 한편으론 간식과 야식을 입에 달고 살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다고 늦게까지 깨어있는 일도 잦았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그런 자잘한 업보가 쌓이고 쌓여 드디어 몸이 폭발한 걸까. 몸의 주인인 나에게 이런 잔인한 복수를 결심할 만큼.
그리하여 많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라도 나는 느리고 천천히 내 몸과 화해하고자 한다.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서 출퇴근하고, 습관적으로 쭈그리고 앉거나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를 피하려 노력하고, 귀찮아도 자기 전에 치실을 빼먹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몇 년 만에 헬스장도 등록했다. 첫 피티를 받는 과정에서 실은 알고보니 내가 여태 잘못된 자세로 스쿼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진작 운동을 제대로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언젠가는 운동을 삶의 일부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부러워하기만 했던 단단하고 억센 팔과 다리를 가질 수 있으려나.
올해 초, 몸이라는 이름의 나의 영원한 동반자에게 실컷 얻어맞고서 느낀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몸이 하는 얘기를 잘 듣자. 내 몸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자. 그리하여 미래에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도록.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언젠가 몸에게 복수당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