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이란 뭘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사랑이란 건 도대체 무엇일까요. 딱 맞는 단어로 정의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아리송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해석은 다분하지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시와 소설, 영화, 그림, 노래의 단골 소재로 써내려져 왔으며, 달콤한 동시에 씁쓸하고, 내면의 유치한 어린아이를 끄집어내고, 밥 먹여 주진 않더라도 입맛은 돌게 하고, 그러다가 되려 밥 한 숟가락 들 힘도 없이 사람을 시름시름 앓게 만드는 것. 햇빛과 공기, 물처럼 우리 삶에 꼭 필요하면서, 때때로 과장스럽고 미화된다고 여겨지는 무언가. 그러나 그만큼 상징적이고 절대적임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 천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사랑의 정의도 천만 가지일 테죠.
저 또한 오랫동안 사랑에 대해 고민해오곤 했습니다. 왜, '진짜 사랑'이란 건 도대체 뭘까, 하고서 말이에요. 언젠가 제가 어설프게나마 도달한 결론은 이랬습니다. '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그 마음이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그 긍정적 고취감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그렇게 남몰래 정의내린 때가 있었지요. 그 뒤로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묘사된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접하면서, 어쩌면 더 나은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2021년 방영된 한국 범죄 스릴러 드라마 <구경이>. 한때 제가 아주 애정했던 극이었지요. 이 드라마에서는 '구경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때 탄탄대로를 걷던 모범 경찰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남편이 자살한 뒤 하루아침에 알콜중독과 게임폐인 신세가 되어버린 인물입니다. 그리고 '구경이'의 조력자로 '산타'라는 인물 또한 등장하는데요. '산타'는 과연 그 이름대로,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진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일종의 맥거핀이라 여겨도 무방하겠지요.
극 중 산타는 주인공 구경을 마치 아이 돌보듯 성심성의껏 보필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주인공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모든 의문이 시원하게 풀리진 않죠. 이 산타라는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해석은 다분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 이름처럼, 산타는 주인공이 믿기로 결심하면 존재하고, 믿지 않기로 결심하면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작품이 진행되는 내내 제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그의 정체나 미스테리한 과거사가 아니었어요. 그가 주인공 구경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맹목적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지에 대해서였죠.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편의 자살. 그 비극적 사건 이후,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한 채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알콜과 게임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구경. 과거에서 비롯된 죄책감에 짓눌리는 그녀에게 시간이란 하루하루 의미있게 쌓여가는 축적 가능한 무언가가 아닌, 그저 무가치하게 반복되고 흐르는 실체 없는 것에 가깝습니다. 바닥에는 쓰레기와 술병이 마구 굴러다니고, 빗어내린 지 오래인 머릿결은 부스스하고, 바깥세계와 완벽된 차단된 방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은 모니터의 인공적인 불빛만 존재하는 일상. 자신을 돌보기를 포기한 구경의 앞에 어느 날 소리없이 나타난 산타는, 언젠가부터 조용히 그의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느 인물과 산타의 차이점이 도드라지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그는 신기할 만큼 구경에게 단 한번도 '변화'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든, 한심히 여기는 마음에서든. 잔소리와 조언과 구박과 핍박을 끊임없이 늘어놓는 구경의 주변인들과 달리 산타는 그저 묵묵히 먼지 쌓인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모아 내다 버리고, 따뜻한 식사를 차려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집안에 환한 햇빛을 들입니다. 물론 껌딱지처럼 곁에 붙어 구경의 상태를 주시하는 일도 빼놓지 않고 말이죠. 산타는 심지어 어느 순서로 씻어야 하는지 헷갈려하는 구경을 위해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에 각각 번호를 붙여 놓을 정도로 세심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녀는 산타의 배려를 가볍게 무시한 채 바디워시로 머리를 박박 감아버리지만요.)
그런 구경과 산타의 묘한 관계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다가, 한번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 해졌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4화 중반이었지요.
장소는 한밤의 사무실. 구경은 연쇄살인마 'K'의 폭주를 막기 위해 집중한 얼굴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 손으로는 과자를 집어먹다가, 손에 묻은 부스러기를 곧장 바닥에 털어버립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과자를 우적우적 먹어치우기 시작하죠. 어느새 옆에 다가온 산타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말없이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습니다. 구경이 다시금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트리자, 체념한 듯 이번에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그것을 닦기까지 하죠. 얼른 주무셔야 내일도 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산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구경은 '귀찮다, 가라.'하는 한 마디로 냉담히 대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타는 화 한번 내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지도 않죠. 다만, 일어나 구경의 어깨에 조용히 담요를 덮어줍니다.
사실 작중 '산타'가 '구경'에게 행하는 사랑은 성애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 겁니다. 모종의 죄책감이나 부채감에서 나온 동정, 혹은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에 더 가까울지도요. 하지만 이 장면을 통해 저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 진짜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토록 사랑하던 연인들이 한순간에 남이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마음이 더이상 예전 같지 않아서, 상대의 외면이나 내면이 변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저는 사랑에 관한 수많은 갈등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상대를 바꾸려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타인으로 시작했던 관계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지면서 마음의 벽이 허물기 시작하면, 우리는 상대를 '나'의 일부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죠. '나라면 저렇게 행동 안 할 텐데.' 하고. 무책임하게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버리는 구경의 행동에 누군가는 '치우는 사람 따로 더럽히는 사람 따로 있냐'라고 벌컥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아마 저라면 그랬을 것 같네요.) 상식적으로 과자 부스러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거 아니냐며 길길이 날뛰며 가르치려 들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산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죠. 한 마디 잔소리 하는 법 없이, 고맙다는 말 한번 듣지 못해도 그저 묵묵히. 산타는 구경의 본질적 행동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내어줄 뿐이죠.
드라마의 결말 부근에서, 구경은 산타의 의심스러운 배경과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어주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이제껏 보여준 따뜻하고 애정어린 헌신을 떠올리면서요. 산타 또한 구경이가 자신을 믿어줌으로써 그의 곁에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산타가 보여준 행동들이 이성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지언정, 저는 이것을 연인 간의 사랑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이 년간 만났던 전 남자친구와 언젠가 아주 크게 다툰 적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해보자면, 네, 제가 그를 바꾸려고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미 언급했듯, 나와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 가장 많이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상대와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나라면 저러지 않을 텐데' 라는 지극히 '본인' 중심적인 못마땅한 마음을 자꾸만 표출하고, 상대가 나와 구별된 타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서 나와 같기를 종용하는 마음. 그 때문에 얼마나 상대를 괴롭게 했던가요. 누군가를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가, 그에게는 얼마나 숨막히게 다가오는지 예상하지 못하고 말이죠.
그렇게 그를 자꾸만 통제하고, 내가 정한 규칙에 끼워맞추려 들다가 결국 그를 잃을 뻔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저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상대도 결국 남이며, 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또한 뼈저리게 깨달았고요. 그때 다짐했어요. 진정한 사랑은 통제가 아닌 자유. 사랑은 내 입맛에 맞는 모양대로 부수고, 조각하고, 깎을 수 있는 돌이 아닌,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놔두어야 하는, 물의 성질에 가까운 것이라고. 그러니 상대의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그 고유한 색채를 더욱 강하게 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이 내가 가진 연인으로서의 의무라고. 연인 사이의 두터운 안정감과 믿음이란 어쩌면 거기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 의무를 서로가 얼마나 잘 이행하는가, 하는 것에서부터요.
애정하는 영화 <엘리멘탈>의 ost로 수록된 노래, 'steal the show'의 가사로 글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I wouldn't mind
난 괜찮아
If you steal the show
이 쇼의 주인공이 너라고 해도
You and I, we go together
너와 나, 우리는 함께할거야
You're the sky I'll be the weather
네가 하늘이라면, 나는 날씨가 되줄게
A pretty thing, sunny rain, oh no
이 세상 아름다운 것들, 햇볕에 내리는 비
Summer night perfect occasion
한 여름 밤, 이 완벽한 타이밍
When I'm by, you know I'll be waiting for you
난 늘 이자리에, 항상 널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거야
Oh for you
널 위해
이 쇼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너여도 괜찮다니, 나의 하이트라이트 씬을 가져가도 괜찮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그보다 낭만적인 마음이 어디 있을까요. 모두가 주목 받지 못해 안달하고, 앞다투어 빛나는 조명 아래 서고 싶어하고, 눈앞에 서있는 상대를 관객 취급하기 바빠 어쩔 줄 모르는 이런 시대에서요.
나보다 상대의 마음을 더 우선시하고, 상대가 '장미꽃'이 아니라는 것에 분개하여 가위를 쥐고 가지치기를 하려 드는 대신, 그를 더 빛내줄 수 있는 안개꽃 같은 존재가 되리라 다짐하는 마음이란 얼마나 귀중하고도 사랑스러운지요. 이 글을 끝내면서 저는,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그것만이 진실된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