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차별

by Asset엄마

“안녕하세요, 혹시 대표님 내일 오찬에 시간 가능하실까요?”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즉흥적으로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미팅을 요청하는 팀이 있다. 세일즈를 하는 입장에서 예기치 못한 일정이 생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거의 매번 이런 식으로 내일 시간 되세요는 양반일 정도로 "지금 회의실 내려오실 수 있나요" 도 부지기수.


외국인 전문 경영인의 일정을 관리하는 나로써는 너무나 반갑지 않은 요청들이다. 일정에 없는 미팅을 욱여넣고 결국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그 뒷감당은 결국 내 몫이니 말이다. CEO 의 일정이 그리 만만한지.


나도 모르게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아니요, 내일 오찬은 선약이 있으십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걸, 내 마음의 소리를 여과 없이 더해 버렸다.

“어떻게 매번 이렇게 임박하여 요청하시나요? 제 입장도 난감합니다. 고객에게 요청 오늘 받으신 거 아니죠?”

“제가 고객에게 오늘 받은 문자를 보여드릴 필요까지는 없을 거 같은데요, 다음부턴 대표님 일정은 직접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팀에 대한 나의 선입견의 지배하에 이번에도 무리하고 무례한 요청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그 직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스러워서 몇 날 며칠을 이불킥을 했다.


내 좁은 기준 안에서 동료를 평가하고 나만의 선입견을 입혀버린건 아무리 생각해도 편협한 행동이였다. 나는 드러나지않게 내내 그 팀 동료들을 차별대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 생활 연차가 쌓이면서 이런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언젠가부터 마음만 먹었지 행하지 못했는데, 된통 걸려버렸다.



뼈아픈 실수를 통해 더 나은 내가 되는거야라고 애써 다독거려본다.




이 글은 직장 내 은근한 차별을 느껴보셨을 분들을 위해 써봤습니다. 죄송한 마음도 가득 담았습니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결정장애 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을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창비 2019년,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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