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웠던 기다림

가장 완벽한 시간

by Asset엄마

지난봄, 막내가 단순한 코감기가 걸린 줄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동네 이비인후과를 데려갔다. 선생님께서 고개를 갸웃거리시며, 축농증이나 만성 같아 보인다고 하셨다. 우선 항생제로 약물 치료를 해보자 하셨다. 약물치료 약 4주간 항생제를 바꿔가면서 치료를 했는데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왕이면 선제적으로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셨다.

근처 동네 다른 동네병원으로 갔다. 4주간 항생제를 바꿔가면서 치료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2주 정도 일단 다시 약물 치료를 시도해 보자고 하셨다. 흔히 축농증이라 불리는 부비동염은 부비동 안에 생기는 염증 때문에 누런 코가 나오고, 숨을 편안히 쉴 수 없기 때문에 두통이 동반되기도 하고, 농이 얼굴뼈에 차게 되면 빰 쪽에 통증이 동반된다고 한다. 다행히 막내는 쉬지 않고 코를 푸는 것 외에는 힘든 증상은 없었다. 부비동염은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는데, 대부분은 급성이고 항생제로 다스려지며 4주 안에 증상이 좋아진단다. 그러나 우리 막내처럼 항생제를 바꿔가면서 치료해도 약물에 대한 반응이 없는 경우, 증상에 따라 더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 봐야 한단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약물치료는 실패하였다. 결국 소견서를 받아서 상급종합병원과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으로 진료를 갔다. 좀 더 정밀한 진단을 위한 CT촬영을 했다. 상황은 너무 심각했다. 얼굴뼈에 있는 공간마다 농이 꽉 들어차있고, 심지어 이마까지 들어찼단다. 두 병원 다 수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부비동염 같은 경우는 대부분 촉각을 다투는 시간이 아니기에, 한 병원은 3개월 뒤, 또 다른 병원은 9 개월뒤로 수술날짜를 잡아주면서 혹시 그 사이에 아이의 상태가 좋아지면 수술은 취소해도 된다고 하셨다.


막내는 진료실에서 교수님이 수술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겁에 질려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찢어지는 거 같았다. 두 번째 병원에서도 수술 얘기를 들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눈가가 붉어지는 걸 보았다. 교수님들께 "꼭 수술을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아이의 증상을 개선시키는 방법은 물리적인 방법인 수술밖에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자라는 아이이기 때문에 수술 후 재발 확률 또한 높습니다. 부모님들 상의하시고 결정하세요" 내가 대신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대신 받고 싶었다.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대부분 수술은 피하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한다는 글과 영상도 수없이 읽고, 봤었고, 또 너무 증상이 심하면 수술을 시키는 것이 이득일 수도 있다는 그리고 영상도 간혹 읽었다. 또 축농증 수술은 하고 나서도 굉장히 괴로운 수술이라서, 어떻게든 안 하게 하고 싶었다. 큰 병원을 4곳까지 가서 진료를 봤지만 어느 하나 시원스럽게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일 될 의견을 받은 곳이 없었고, 의학적인 면에서는 수술을 권유하나 결국은 부모가 결정하라고 했다.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집에 오는데, 막내가 물었다.

"엄마, 수술은 어떻게 하는 거야?"

"응, 너는 전신마취를 하면 깊이 잠들어서 아무것도 모를 거야. 깨어나면 수술은 끝나 있을 거야. 이비인후과 가면 콧속을 보는 긴 내시경 집어넣잖아, 그것보다 더 좋은 내시경으로 콧속에 코도 싹 빼주고, 혹도 없애주는 거래"

"깨어나면 아파?"

"응, 10 밤은 아플 거래"

"병원에서는 누구랑 같이 자?, 엄마랑 같이 잘 수 있어? 아니면 병원 선생님이랑 자는 거야?"

아이가 수술을 받아들이고, 수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거 같아서,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을 집에 와서 화장실에서 터뜨렸다.


수술이 결정되고, 병원에서는 항생제 치료도 중단했고, 생활하다가 수술 전 검사날 내원하라고 했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집안을 최대한 쳥결하게 유지하고, 코 세척을 하루에 세 번씩 시키고, 염증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영양보조제를 챙겨 먹이고, 밤마다 새벽마다 자는 아이를 붙잡고 기도했다. 또한 가공식품이 염증을 더 유발한다는 기사를 읽고,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라면, 과자, 초콜릿, 젤리 등을 모두 끊었다. 무심하게도 아이의 증상은 나아지는 조짐이 없이 여름이 지나갔다. 가을 수술날짜가 다가오는데...


수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어느 날. 막내, 나, 남편 그리고 첫째와 둘째까지 우리는 막내의 수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회사 동료이자 고등학교 후배가 행사에 같이 하자하여, 사실 나 그즈음이 우리 막내 수술날이라서 못 갈 거 같다고 하였다. 후배는 깜짝 놀라며, 왜 얘기 안 했냐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날 오후에 메신저를 보내왔다.

"언니, 막내 수술 최종결정하기 전에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 한 번만 데려가보자. 선생님이 좀 다르셔"

"병원이 예약은 받지 않아. 내가 가서 접수해 놓을 테니 막내 데리고 와"

수술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후배가 간곡히 얘기하여,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보자 했다. 사실 막내와 나는 병원을 가는 것이 힘겹고 지치는 일이었다.


"어머님, 저는 지금 당장 수술을 권하고 싶지 않네요. 이제 만 11살 되는 아이인데, 수술을 해서 얻는 득과 실을 계산해 본다면 저는 조금 더 지켜보면서 결정하시라고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좋아지는 케이스들도 많아요. 제가 틀릴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교수님과 또 수술을 많이 하는 제 친구 이비인후과 교수랑 막내의 케이스를 의논하고 알려드릴게요. 저희가 지금 시도해 볼 수 있는 건 호흡기 면역치료를 3달 동안 해보시죠."


모두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이 환자는 수술 외에는 좋아질 방법이 없습니다를 얘기했지만, 나와 막내는 처음으로 다른 답을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바쁘신 와중에도 일주일도 안되어서 직접 답을 주셨다. 다른 교수님들과 막내의 케이스를 의논해 봤는데 더 지켜보고 수술을 결정해도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단다. 나와 막내는 첫 번째 수술 예약 날짜를 미뤘다. 최선을 다해 약을 챙겨 먹고, 코세척을 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3개월의 면역 치료가 끝나갔어도 말끔하게 낫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선생님은 호전되어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노란 코가 계속 나온다고 하니, 배출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라고 안심시켜 주셨고, 비정상 조직으로 막혀있던 부비동이 미세한 숨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알려주셨다.


지난 5월, 정기 검진을 가자 선생님께서는 부비동이 완전히 뚫려서 이제는 수술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셨다. 콧속에 보이던 누런 코도 이제는 말끔히 사라졌다고 하셨다. 선생님도 미소를 지으시며, "어떻게 이렇게까지 좋아졌는지 저도 신기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는 2달에 한 번만 와도 되겠다고 하셨다.

최근 감기가 걸려서 제일 처음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유하셨던 동네 이비인후과를 방문하였다. 선생님께서도 축농증이 없어졌네요, 하시며 다행이라 하셨다.




수치상이나 CT촬영의 판독, 객관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수술이 막내에게 가장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치료 방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성장할 아이의 코 뼈를 깎고, 구멍을 뚫는 수술은 부모로서 결정하기 너무나 어려웠다.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병원에서는 객관적인 수치의 판독으로 수술이라는 같은 치료방법을 제시하였고, 질병 자체가 생명에 지장을 아닌만큼 보호자가 내려야하는 결정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다. 그러나, 환자의 객관적인 수치만 분석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상황과 마음까지 생각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느린 치료과정이었지만 수술 없이 회복할 수 있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중,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모든 것은 제때에 온다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와 막내의 1년간의 힘겨웠던 기다림이었다.


막내야, 지난 1년간 엄마랑 같이 병원 다니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여름에는 좋아하는 수영도 못하고, 라면도 과자도 못 먹고 고생했어. 무엇보다 1년 동안 네 마음도 힘들었던 거 아는데 엄마도 엄마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막내 마음 많이 보듬어주지 못했어. 그런데, 우리 막내가 엄마보다 훨씬 더 씩씩하고 용감해. 엄마는 수술대 앞에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우리 막내는 수술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어. 그래서 엄마는 더 마음이 아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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