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기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육아든 집안일이든, 서로 시간 되는 사람이 먼저 하면 되지. 그걸로 왜 싸워?”
육아 때문에 부부 사이가 틀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참 평화로웠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철없던 단정이었는지 절절히 깨닫는 중이다.
남편과 나는 1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서로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고, 둘이 살 땐 싸울 일도 거의 없었다.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안정적인 일상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진짜 이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이 맞아?' 싶을 정도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쳤다.
모든 게 뒤바뀐 낯선 세계 속,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이미 지쳐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35일쯤 되었을 때, 남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오늘 술 마셔도 돼?”
술을 좋아하는 그는 이젠 자기가 술을 마시면 육아는 전부 내 몫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눈치와 애교를 장착하고 허락을 구했다.
요즘 새로 시작한 사업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아기도 잘 자고 있으니... 그래, 기분이다!
“갓난아기 두고 술 마시게 해주는 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알지?”
나는 생색을 한가득 곁들여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자정 무렵, 아기가 예고 없이 깼다.
우렁차게 울기 시작한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층간소음 민폐 이웃’이란 제목의 하소연 글이 스크롤처럼 흘러갔다.
급히 주방으로 달려가 분유를 타려는데, 마음이 급하니 느린 손이 더 허둥지둥. 분유를 흘리고, 젖병을 떨어뜨리고... 아기는 계속 울고...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은?
소파에 누워 술기운에 눈을 반쯤 감고, 느긋하게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
진심으로, 분유통을 그의 머리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 분노는 술 때문도, 유튜브 때문도 아니었다.
‘왜 이 상황을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 태도였다.
아무리 술을 마셨다 해도, 아기를 달래 보려는 시늉이라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분유를 타서 아기에게 먹이며, 결국 터져버렸다.
“아기 우는 거 안 보여? 대낮도 아니고. 내가 분유 타는 동안 아기를 달래야 할 거 아냐?”
그제야 남편은 미안해하며 변명한다. 못 들었다고...
하... 못 들었다고?
그날 밤,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났다.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불만과 억울함, 실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건 팀플레이가 아니었다. 그냥 나 혼자 등판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황스럽고,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갈까?
벅차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기를 두고 나갈까?
내 품을 아는 아기가 하루 종일 울 텐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사실 하루쯤 혼자 육아하게 하는 게 가장 효과는 클 텐데... 아기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결국 나는, 다음 날 아침 남편이 분리수거하러 나간 틈을 타 현관문 이중 잠금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나가는 것보다 남편을 쫓아내는 게 훨씬 쉬웠다.
잠시 후, 남편이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덜컹. 문을 몇 번 흔들더니 이내 상황을 짐작한 듯 당황해했다.
전화, 카톡, 초인종. 온갖 수단을 동원하다가 내 반응이 없자, 조용히 문틈에 입을 대고 빌기 시작했다.
“마누라~~ 문 좀 열어줘. 마누라?”
“나 배 아파... 화장실만 쓸게. 진짜야...”
잠시 후,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마누라, 옆집 아줌마가 날 이상하게 쳐다봤어...”
점점 간절해지는 목소리. 나는 소파에 앉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복수를 겸비한 효과적인 충격요법이었다.
문을 두드리길 여러 번.
세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마침내 문을 열어줬다. 남편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퀭한 눈, 백 단의 눈치.
허겁지겁 아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빠랑 놀자~!”
지금 생각하면, 남편에게 고마운 점도 있다.
그날 화를 내거나 성질을 부렸다면, 한 판의 싸움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굴욕을 감수하며, 싹싹 빌었다.
그래서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훗날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쾌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실시간 중계받은 나의 친언니는 너무 일찍 문을 열어줬다며 내심 아쉬워했다. 역시 남의 집 부부싸움 구경이 가장 재미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