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침대가 될게.

by 여름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내 별명은 ‘나무늘보’였다.

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무엇보다 성격이 느긋해서 무엇이든 서두르는 걸 싫어했다.


나무늘보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동물이지만, 그 느림 덕분에 새끼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거꾸로 매달린 엄마의 배를 침대 삼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느릿한 움직임이지만, 항상 품에 두어 사랑을 누구보다 빠르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기는 엄마의 느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잠이 많은 건 나를 닮은 것 같은데, 문제는 배고프기 직전까지 자다가 눈을 뜨자마자 우렁찬 울음으로 아파트를 뒤흔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긴장 상태다. 이젠 자다가도 인기척 하나에 번쩍 눈이 떠진다.


모든 동물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며 살아가듯, 나도 느림을 보완할 나만의 육아 요령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


분유포트는 항상 43도로 맞춰 물을 넉넉히 준비해 두고, 소독한 젖병의 꼭지와 뚜껑을 미리 조립해 둔다.

아기가 얼굴을 비비기 시작하면 바로 분유를 준비한다. (가끔 다시 잠들긴 하지만...)

옷은 머리를 빠르게 넣는 게 관건.

그리고, 내 식사는 아침에 최대한 많이 먹어둔다. 점심은 아기의 컨디션에 따라 날아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 나는 하루하루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업그레이드하며, 느림보 엄마의 육아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끔,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몰아치면,

느림은 무너진다.


며칠 전이 그랬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이제 기저귀까지 갈고 나면 아기는 곧 잠들 것이다. 나는 벌써 머릿속으로 소중한 자유 시간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때, 따뜻한 물줄기 하나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저귀 안에서 한껏 충전된 물총이 기세 좋게 발사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깜짝 놀라 피했겠지만, 요즘은 그냥 맞는다. 바닥에 흘리는 것보다 내 옷에 묻는 게 차라리 치우기 쉽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바닥을 닦고, 아기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마저 채우고,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괜찮다. 아기는 곧 잠들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방긋 웃던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뿌지직.

익숙한 소리, 더 익숙한 냄새.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휴식이 점점 멀어져 간다.


기저귀를 다시 벗기고, 엉덩이를 닦은 뒤 물로 씻기고, 수건으로 말린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고 나를 다독이던 찰나,

또 한 번의 물총 발사. 그리고 곧이어 터지는 성난 울음. 속을 비웠으니, 이제 다시 채워달라는 뜻이다.

아... 아직 젖병 소독도 안 끝났는데.


육아는 정말 속도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가 되기엔 너무 느리다.

하지만 어미 나무늘보가 느린 덕분에 아기에게 안락한 침대가 되어주었듯, 나의 느림도 언젠가는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오늘도 아기와 나는 서로의 속도에 조금씩 맞춰가며, 중간 어딘가에서 함께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느리지만, 우리는 분명히 함께 걷고 있다.

나의 느림이 무너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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