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색을 낸다고?

by 여름밤

"마누라는 생색내는 거 좋아하잖아."

어떤 대화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남편이 던진 그 한마디가 묘하게 뇌리에 남았다.


... 내가 언제?


나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집안일을 최대한 끝내놓는다.
특히 청소는 내 철칙이다.
밖에 나갔다 들어왔을 때 깨끗한 집이 주는 기분 좋은 순간을 아니까.

그래서 아기가 혼자 놀거나 낮잠 잘 때,
사실상 내 유일한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반납하며 청소한다.


그 마음을 조금 알아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고생했어” 한마디면 된다.

게다가, 잘한 일에 생색 좀 내면 어떤가.
남편이 그걸 ‘생색’이라 여겼다니 억울하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설명하자니 구차해 보여 그냥 삼켰다.


지난주 일요일.
아기가 새벽부터 보채기 시작했다.
잠 많은 아기지만, 가끔은 이런 날이 있다.


남편이 일어났을 때 이미 나는 만신창이였다.
“나 새벽부터 한숨도 못 잤어. 손까지 떨려.”

하소연이었지만, 솔직히 “넌 푹 자고 일어나서 좋겠네?” 하는 배 아픔이 살짝 섞여 있었다.

“내가 아기 볼게. 얼른 들어가서 좀 자.”
남편이 내 마음을 눈치채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아기 소리에 자동으로 깼을 텐데

그날은 정말 깊이 잠들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꿈속에서 점점 커지던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가니 남편이 쩔쩔매며 아기를 안고 있었다.
“푹 자라고 해놓고 왜 이렇게 아기를 울려~”
컨디션이 좋아진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최대한 안 울리려 했는데...”
남편의 얼굴은 반쪽이 돼 있었고,
눈 밑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괜찮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나 잠깐만 누울게.”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온 남편이 말했다.
“진짜 잠깐 화장실 가는 데도 울어. 넌 이걸 매일 겪는 거잖아...”

평소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날은 유독 아기가 많이 보챘다.

좋은 날 잘 걸렸다.


그러더니 남편이 주방으로 가서

주중에 내가 먹을 밑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를 모두 마친 남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 종일 일만 했네?”

드디어 나올 말이 나왔다.

오늘 밤 술 한잔하고 싶다는 간접적 신호이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생색내지 마라.”


육아는 생색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걸 서로가 조금만 더 알아준다면,
내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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