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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Aug 18. 2024

잘 사랑하는 방법 - 1

당신의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깨닫기

깨달음은, 그러니까 지혜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당신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입니다. 늘 거기에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 문을 연건 당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을 그저 지나치지만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잘 사랑하는 것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사랑이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속삭였을 겁니다. 당신은 기쁩니다. '당신'이 기쁘단 말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감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랑을 하면 벅찬 행복감에 휩싸이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늘 '자신'입니다. '아닙니다. 제 여자친구도 저 때문에 많이 행복해합니다!' 물론이겠지요. 그렇게 행복해하는 상대방을 바라보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또 '자신'이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결국 이기심, 즉 자기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사랑을 아무리 고결한 것으로 포장해도 그것 또한 자기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에 대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일컫는 부모님의 사랑 또한 결코 무조건적이지 않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식을 사랑합니다. 어느 부모는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자식을 등집니다. 어느 부모는 자기 멋대로 자식을 키웁니다. 어느 부모는 적절하게 자식을 키웁니다만, 이마저도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 방식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꼴 보기 싫은 자식에게도 밥상을 차려줍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조건적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자기애가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자신이 하는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당신의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무의식에 자리한 자기애를 인식했다면 이제 잘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구분해 보십시오. 이번 주말에 좋은 데 가자고 제안하는 당신의 말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우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마음이 우선하고 있습니까? 이 마음이란 것은 복잡한 층위를 이루고 있어 꽤나 고민을 해봐야 할 겁니다. 참고로 한쪽만을 위한 순수한 사랑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아마 상대방에 대한 마음과 자신에 대한 마음이 뒤섞여 있을 겁니다. 당신은 피곤해서 주말에 쉬고 싶지만 상대방을 위해서 좋은 데 가자고 제안한다면 그것이 상대방만을 위한 감정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은 그렇게 한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낍니다. 기뻐하는 상대방의 모습으로부터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니 이 제안 역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애를 인식의 범위로 끌어올리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통제할 수 있는 의지나 힘이 생깁니다. 이 말은 곧 상대방을 우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나보다 먼저 생각했을 때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인간이라면 대가를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애를 인식하면 그 대가를 바라는 나의 마음도 투명하게 보여 그 마음을 경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해'는 사실 '고마워'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우린 사실 '나를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마움을 느끼면 되갚아주려고 합니다. 사랑의 선순환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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