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신이다.

하늘이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

by 정현태

요즘 나는 한 문장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 문장은 바로 '삶을 신뢰한다'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른 이 문장은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았다. 마치 이 문장으로 글 한 편을 써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어 몇 번이나 책상 앞에 앉았지만,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 관두었다. '삶을 신뢰한다'라는 문장이 품은 추상을 글이라는 구체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하늘이가 떠올랐다.


하늘이는 전능하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얻어낸다. 하늘이의 마음에는 정해진 틀도 한계도 없다. 하늘이는 판단하지 않고 그저 수용한다. 하늘이의 우주에는 '두려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두려움이 없으니 용기를 낼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하늘이는 무엇을 하든 애쓰지 않는다. 그냥 한다. 아무런 의도가 없는 행위에는 실수나 실패가 있을 수 없다. '두 발로 걷고야 말겠어'라는 의도나 의지가 있다면 넘어질 때마다 낙담하고 슬퍼했겠지만, 하늘이는 그렇지 않다. 순수하게 행위하는 하늘이는 언제나 성공한다. 신을 닮은 존재, 천국에 가장 가까운 존재, 그것이 바로 하늘이다.


솔직히 말해 하늘이는 삶을 신뢰하지 않는다. 삶을 신뢰하는 경지를 넘어섰다. 하늘이는 하나의 삶, 그 자체다. 자의식(에고)이 생기기 전의 아기들은 모두 그렇다. 저마다 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이를 보고 있으면 신성을 느끼게 된다. 하늘이의 신성은 하나의 등불이 되어, 내 타락한 마음을 비춘다. 그것이 하늘이 앞에 내가 한없이 겸손해지는 이유다. 속세의 때가 묻은 나는 자의식으로 충만해 있다. 하늘이와 달리 내 말과 행동은 언제나 의도를 품고 있다. 의도가 있는 행동은 번번이 실패한다. 나는 판단하기에 늘 오해한다. 나는 억지로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감추지만, 그럴수록 삶은 내가 의도한 방향과는 반대로 간다. 애쓸수록 천국으로 가는 길은 더 멀고 복잡해지지만,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것이 바로 '나'다.


삶을 신뢰한다는 것은, 삶이 주는 모든 것을 그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수시로 목소리를 내려는 자의식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삶을 온전히 신뢰한다. 힘겹게 얻은 아들을 내놓으라는 신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모든 것을 빼앗겨도 신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잃지 않았던 욥처럼, 나는 이 삶을 신뢰한다. 나 또한 인간이라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한 번 얻어진 선명한 앎은 갑주와 방패가 되어 나를 지킨다. 두렵지만 두렵지 않다. 의도하지만 의도하지 않는다. 판단하지만 판단하지 않는다. 애쓰지만 애쓰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지만 두 걸음을 내딛어 천국으로 향한다. 나 역시 신의 형상을 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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