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영어 강사일이 힘들게 느껴진 이유는,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일을 관두면서도 나는 대한민국의 이러한 교육 현실이 나를 이 업계에서 떠나게 한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본부장님과의 대화 이후에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이유는 숭고한 뜻이 있는 교육자의 좌절 같지만, 사실 주된 이유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결국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전자가 교육자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한 개인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교육이나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의 행복이었다. 결국 '보람'이라는 것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에 나 자신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로써 내 삶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보험업은 하는 만큼 벌어가는 일이다. 언젠가 본 뉴스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30대 억대 연봉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이 보험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할 때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나였기에, 이 일도 적성에만 맞으면 고소득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2025년 11월의 어느 날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4박 5일간 서울의 한 연수원에서 먹고 자며 보험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간 성적에 따라 수상도 한다기에 나는 반드시 1등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먹여 살려야 할 식솔들이 있는데 곧 수입이 끊긴다고 생각하니, 배수진을 친 장군처럼 간절함과 용기가 생겼다. 나는 교육 프로그램에 아주 모범적으로 참여했고, 무언가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결국 나는 30명 중 2등이라는 성적으로 프로그램을 졸업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나의 세계를 해체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과 만나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였다.
프로그램은 내가 기존에 쌓은 관념 한 가지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바로 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보험이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끝에는 어쩌면 보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 결론이 내게 갖는 의미는 상당히 컸는데, 그 이유는 내가 없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파는 상품에 대해 확신이 없는데, 그 상품을 팔고 있다면 그게 사기꾼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보험업에 도전하기 전에도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이다.
5일 간 진행되는 교육 중에 역할극이 있었다. 교육생이 보험설계사가 되고 선생님이 고객 역할을 맡아 가상의 상담을 해보는 것이었다. 처음 뱉어보는 문장이 많았고 더군다나 다른 교육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기에, 대부분의 교육생들은 잔뜩 긴장해 제대로 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강사로서 경력을 쌓으며
갖게 된 자질을 통해 역할극을 비교적 잘 수행해냈고, 이 과정이 내게는 꼭 필요했던 자신감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내가 남들보다 낫다면, 필드에 나가서도 내가 더 잘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애초에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