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보험업 도전기 4

by 정현태

해가 바뀌었고 나는 대전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교육 프로그램에서 깨달은 것도 많았고 좋은 성적까지 받아놓은 터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본부장님은 나의 열정과 태도를 높이 평가하셨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정말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주차에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지인들에게 연락해 내가 보험업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지인들을 대상으로는 영업하고 싶지 않았는데 목에 칼이 들어오니 자연히 하게 되었다. 보험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을 지인에게 파는 것에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교육 프로그램의 세뇌(?)도 한몫했다. 나는 '가지고 있는 보험을 분석해 주겠다'며 지인들에게 접근했고, 꽤 많은 지인들이 개인정보 공개에 동의해 주어 그들의 보험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짜 보험설계사가 뭘 알겠는가? 본부장님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분들이 내게 도움을 주셨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 혼자 끙끙 앓았다. 이 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에너지를 쥐어짜 내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본부장님은 고뇌하는 내가 자꾸 눈에 밟히셨는지 경력자를 붙여줄 테니 빨리 지인과 미팅 일정을 잡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연락을 해봐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한 지인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지인에게 전화하기'가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나는 지인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고, 전화 그 자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지인은 함께 일했던 학원 강사였고, 내가 학원을 그만둘 때 "나중에 진짜 필요하면 연락해. 하나 가입해 줄게."라고 말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도움을 요청하는 나의 모양새가 조금은 우스웠다. 자존심도 조금 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랴? 윗선에서는 계속 무언의 압박을 해왔고, 나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지인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하자, 지인은 웃으며 벌써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제와서는 대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말을 더듬었던 것 같고 꽤 뻔뻔스럽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던 것 같다.


그렇다. 이 일에는 뻔뻔함이 필요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큰 부담을 느껴서는 안 됐다. 이 자질이 내가 1편에서 언급했던 보험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자질' 중 하나였다. 누군가에게는 이 '뻔뻔함'이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왜냐면 그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감'이나 '당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 자신감이나 당참과 같은 자질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데, 이 일을 하면서는 쥐어짜야 하는 걸 보면 뻔뻔함과 자신감 사이에는 분명 묘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아니면 상황에 차이가 있거나)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지인과의 통화는 정말 힘들었다.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자기혐오는 통화 전, 통화 중, 통화 후 가릴 것 없이 날 괴롭혔다. 진정 나는 이 사람을 수단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지인은 보험을 팔아줬다. 상담은 본부장님이 붙여주신 지점장님(경력자)이 대신하셨고, 나는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보험 상품의 상담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참 많이 궁금했는데, 직접 참여해 보고 나니 이 업의 구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지점장님이 계약을 따주신 것보다 이 구조를 알게 된 것이 더 기뻤다.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계약을 따낸 것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슬프기까지 했던 것 같다.


지인의 계약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쿨하게 도움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나에게도 한 친구가 보험을 팔기 위해 접근한 적이 있었다. 참 착한 친구였는데, 나는 꽤 단호하게 거절했다. 친구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지인의 거절은 꽤 아프다. 거절 그 자체도 아프겠지만, 그것이 지인의 거절이라 더 아프다. 거절한 지인이 원망스럽거나 싫은 건 아니다. 모든 상황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섭섭함이 본능적으로 피어오른다. 내게 보험 가입을 권한 그 친구도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나는, 그때도 도움이 필요한 친구의 입장을 먼저 살피기보다 내 입장을 우선했을 것이다. 나는 이토록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 이타적이고 따듯한 사람을 보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 눈에는 그들이 너무나도 대단해 보인다. 그들이 너무 부러워서 나도 따듯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스스로가 따듯한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 본질이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스스로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럼 적어도 나로 인해 아파할 사람들의 마음은 살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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