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1 - 우림

울산

by 정현태

우림이를 만나러 울산에 왔다. 우림이와의 인연은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이었다. 당시에 호주 워홀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계획이 하나 있었다. 캐나다나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한 번 더 가는 것.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생각을 그때의 나는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워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문득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워킹홀리데이' 키워드를 입력하고 이곳저곳을 드나들다가 우림이의 피드까지 닿았다. 우림이는 영국에 있었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왜 우림이였을까. 우림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것도 웃긴 일이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 보낼 만큼 능청스러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스스로 규정한 나'의 모습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마다 꽤 재밌는 일이 생긴다. 도대체 이런 행동을 하게 하는 동기는, 의지는, 그리고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을 하면 할수록 운명의 실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우림이는 나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대화는 표면을 뚫고, 심연 근처까지 스며들었다. 생전 마주한 적이 없는 사람한테 꽤나 깊은 내적 친밀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림이와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다가 2016년에 서울에서 한 번, 2017년 부산에서 한 번 만났다. 그러니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던 것이다. 약 7년 동안 고작 세 번의 만남이라니. 서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웃었다. 이 관계가 여태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잠시 멈춰 서 어떻게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고민해본다. 난 우림이의 삶이 궁금하다. 우림이가 남긴 삶의 흔적들이,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여 완성될 한 폭의 그림이 나는 궁금하다. 내가 우림이라는 존재의 신성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 그녀 또한 내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가 받아들여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경험들이 내 편에서나 그녀의 편에서나 흔한 것은 아니기에 이 관계가 이렇게 이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데 우림이가 내일 아침에 먹으라며 상자 하나를 건넸다. 상자에는 먹음직스러운 파이 두 개가 들어있다. 그녀가 직접 구운 파이. 다음 날 일어나 헛헛한 배를 달랠 생각에 이미 기분이 들떴다. 다음 날 일어나 대충 눈곱을 떼고는 파이부터 집어 들었다. 파이를 먹는데 이건 단순히 파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음미하는 것 같다. 정성스럽게 반죽을 하고, 내용물을 준비하고, 오븐을 여닫는 그녀의 모습이 파이를 먹는 내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 상상 속의 그녀는 본인이 아끼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정성스럽게 구워낸 파이를 먹일 생각에 궂은일을 하면서도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차갑게 식은 파이가 참 따뜻하다.



우림이가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라보며 그녀의 우주가 끊임없이 개편되는 모습을 본다.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첫날에도 느꼈지만 그녀의 우주는 점점 더 따뜻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림이의 앞날이 궁금하다. 이제 또 오랜 시간 뒤에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잠시만 안녕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로운 친구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