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외인의 똥간을 치웠던 육군 장교 이야기

대전 지하상가 / 의류 판매(2014. 8 ~ 2015. 1)

by 정현태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옷을 팔았나 싶다. 일에 완전히 적응했을 때는 난 한 마리의 상어가 되어있었고, 매장에 들어온 고객은 사냥감이었다. 처음엔 내가 사냥감이고, 손님들이 상어인 듯 손님만 들어오면 어쩔 줄 몰라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된 것이다. 사장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셔츠 한 장 사러 온 손님에게 바지도 끼워 팔고, 겨울엔 코트도 끼워 팔곤 했다. 나는 이 일을 꽤나 사랑했다. 박봉에 출퇴근 시간도 길고, 업무 시간도 길고, 뭐 하나 좋은 조건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뛰놀듯 즐겁게 일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군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음은 물론, 태어나서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노동의 기쁨, 보람이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특별한 나날들이었다.


이즈음 사장님은 내가 믿음직스러우신지 매장을 비우시는 일이 빈번해지셨다. 사장님이 안 계시더라도 최대한 사장 마인드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은 책임감이 있다고 하겠지만 워낙 좋아했던 일이었기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매장이 한가할 때는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사장님이 매달 가져가시는 순수한 수익금이 얼마 정도 되는지 계산해보기도 하고, 이런 매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얼마가 필요하고 어떠한 과정이 필요한 지 알아보기도 했다. 양복과 사랑에 빠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매장에 신상이 들어올 때마다 부리나케 입어보고는 거울 앞에서 있는 폼을 다 잡곤 했다. 얼굴은 별로였지만 길쭉길쭉 잘 빠진 몸매 덕에 목 아래로는 그런대로 봐줄만했다. 양복은 정말 멋있는 옷이었다. 장점을 부각해주고 단점은 최소화해주는, 남자에게는 갑옷과도 같은 옷이었다. 양복이 좋아 양복에 대해서 더 알아보다 보니 맞춤 양복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이 분야는 또 완전히 신세계였다. 마니아들을 위주로 몇 개의 인터넷 커뮤니티도 잘 발달되어 있었고, 맞춤 양복을 착용한 사람들의 사진을 볼 때는 일반 양복과는 확연하게 다른 태가 눈에 띄었다. 커뮤니티에서 본 사진 중에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진이 있다. 맞춤 정장에 멋진 구두까지 완벽하게 차려입은 어떤 분의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처음 누군가가 '섹시'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맞춤 정장을 입어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언젠가 꼭 맞춤 정장 업계에서 일을 해보겠노라고.


맞춤 양복에 대해서 알고 나니 내가 판매하는 양복들이 시시해졌다. 원가 구조를 알고 있었기에 고객들로부터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닌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갈등을 느끼기 시작하며 좋은 상품을 좋은 가격에 팔고 싶은 열망이 강해졌다. 내가 하는 일에 한점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이었다.


애초 계획은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던 3개월 동안만 일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너무 재미있고, 사장님도 너무 잘 챙겨주셔서 6개월 정도 일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바뀌어 2015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일을 더 한다고 하더라도 배울 것이 더 이상은 없음을 확신한 나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사장님께 퇴직 의사를 밝힐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좋아했던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사장님께 내 의사를 밝혔고, 사장님은 나의 뜻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셨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이따금씩 일을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사장님께 몇 번 연락이 왔다. 그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가서 두 팔 걷고 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사장님은 내가 호주로 가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하셨고, 호주에 다녀온 뒤에도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호주에 있을 때도 사장님은 몇 번이나 언제 오느냐고 물으셨고, 귀국하면 꼭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내가 일하는 모양새가 어지간이 마음에 들으셨나 보다. 귀국해서 안부 인사를 드리니 본인은 이제 다른 일을 할 예정이니 지하상가 매장을 전담해서 맡아달라고도 하셨는데 맞춤 양복에 뜻이 있음을 말씀드리고는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전 지하상가 패션의 거리에서 일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를 경험한 것이었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다. 나는 곧 죽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란 것. 그렇다면 이제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 일을 지속하는 일만 남았다. 일단 후보는 맞춤 양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인데 인생이 단 한 번이라도 계획된 대로 된 적이 있던가? 전인미답의 길,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가 보는 것이다. 삶은 어떠한 형태로든 펼쳐진다. 자, 이제 떠나자. 호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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