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외인의 똥간을 치웠던 육군 장교 이야기

대전 지하상가 / 의류 판매(2014. 8 ~ 2015. 1)

by 정현태

전역 이후에 호주에 갈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치과에 다녀온 지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호주에 가서 이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가 아파지니 출국 전에 검사나 한번 받아볼 요량으로 치과에 들렀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개의 충치가 있다고 했고, 그중 몇 개는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성급하게 치료를 결정했나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 또한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을 왜 일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아무 생각 없이 치료를 받겠다고 했고, 단순한 충치 치료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음식을 씹을 때 치료받은 이 주변에 엄청난 통증이 발생했다. 결국 애써 때운 충치 치료제를 다시 벗겨내고 신경을 파내는 치료까지 하게 되었다. 제법 오랜 시간 치료를 받느라 호주행 비행기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심해 턱관절에까지 이상이 생기면서 애초에 세웠던 계획에 많은 차질이 생겼다. 턱관절 치료 때문에 들른 한의원에서는 세 달 정도 정기적으로 치료받기를 권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아파서 병원에 들른 것도 아니었는데 멀쩡한 이의 신경이 거덜 났고, 연쇄 작용으로 턱관절에 문제가 생겼고, 치료비 때문에 200만 원 정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다. 제때 치료를 안 했다면 더 큰 일로 번질 수도 있었다고 위안 삼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천생이 놀고먹을 수 있는 팔자가 아니다 보니 짧게 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카페와 옷가게였다. 꼭 한번 일해보고 싶은 분야였다. 그중에서도 옷가게 쪽에 좀 더 구미가 당겨서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락이며 정보를 수집했다. 둔산동에 몇 군데, 그리고 은행동 지하상가 몇 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뛰어나지 못한 외모 탓도 있고, 말단 직원으로 일하기에는 적지 않았던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하상가의 한 매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하상가 옷가게는 대부분이 10~20대를 타깃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딱 두 군데가 20~30대를 타깃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둘 중 한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사장님께서 내가 장교 출신인 걸 귀하게 여기셨고, 적지 않은 나이를 오히려 장점으로 봐주셨다.


18699634_1080864968724425_4202151042411942135_o.jpg 6개월 가량 일했던 곳 / 지금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 시크


사장님은 20대 초반에 지하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하셔서 40대가 되셨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옷 장사를 하신 베테랑이셨다. 초반에는 나의 미숙한 일처리에 화도 많이 내셨지만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천천히 마음을 주셨고, 결국 나를 온전히 신임하셨다. 벨트 하나 사러 온 손님이 사장남의 말발에 휘둘려 매장을 나갈 때에는 양복 케이스를 들고나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정도로 사장님은 장사 수완이 어마어마하신 분이었고, 나는 그런 분 밑에서 빠르게 장사꾼이 되어갔다. 처음에 손님이 오면 어찌할 줄 몰라 쭈뼛대던 나는 한, 두 달 만에 손님 응대에 능숙해져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판매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허름한 차림으로 들어온 손님이 나의 추천을 받아 멋지게 탈바꿈하여 매장을 나설 때는 더없이 깊은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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