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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Mar 18. 2023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무상하기 그지없다.

가장 오랜 친구 민재의 결혼식을 앞두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멈춰있는 것이 없음을 또다시 실감한다. 가장 오랜 친구인 민재가 결혼한다.


민재와의 우정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민재는 꽃미남에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하고,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무리를 지었던 집단에 내가 합류하면서 민재와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하교 후 같이 집에 가던 때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모두가 인정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 하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민재가 떠오르는 그 시절이 참 좋았다. 민재는 사춘기를 겪으며 여드름이 나고, 직모였던 머리는 엄청나게 곱슬거리기 시작했다. 브로콜리라는 별명은 얻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꽃미남 타이틀은 잃었지만 외모를 제외한 민재의 모든 스탯은 여전히 정점이었다. 그래도 내가 민재보다 잘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었다. 대충 해도 민재를 가뿐하게 이겼기 때문에 이건 내가 평생 민재보다 잘하겠구나 싶었다. 그날도 민재를 세 판 내리 아주 쉽게 이긴 날이었다. 나는 한껏 우쭐해져 민재에게 100판을 해도 내가 다 이기겠다며 도발했다. 민재는 그날부터 이를 갈며 그 게임에 매달리더니 얼마못가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스타에 흥미를 잃었고, 지금은 아마 반대로 내가 한 판도 못 이길 것 같다.


얼마 전 민재와 피시방에서 / 민재와 함께 하는 피시방은 아직도 늘 기다려지는 것 중 하나다.


유년기 민재와의 추억에는 '게임'이 참 많이 얽혀있다. 민재와 게임을 참 많이 했다. 한 시간에 500원에 최고 사양의 컴퓨터가 있던 도마동 딸기 피시방에 버스까지 타고 가서 온종일 게임했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겹도록 게임을 하고 나와서는 인근에 있는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핫도그까지 양껏 먹었다. 핫도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설탕 알갱이가 아직도 입속에서 씹히는 것 같이 지난날이 선명하다. 게임을 하다가 서로 의가 상해 민재와 2년 가까이 의절한 적도 있는데 이거는 조금 있다가 천천히 이야기해보련다.


민재는 늘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나랑 놀 건 다 놀면서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공부로 민재를 한 번 이겨보겠다고 중3 때 꽤 열심히 공부한 적도 있었다. 민재가 당시 공부를 거의 안 해서 성적이 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근처에도 못 갔다. 그래도 민재 덕분에 나도 전교 20등 가까이했던 때가 이때였다. 민재와 스탯이 비슷했더라면 둘 다 자존심이 강해 많이 다투었겠지만 민재는 모든 부분에서 날 압도했기 때문에 내겐 늘 선망에 대상이었고, 그렇기에 대게 나한테는 좋은 영향을 끼쳤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민재는 여전히 삶의 저편에서 앞서가며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결국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로 진학한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 계속해서 우정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고1 때는 민재가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와서 나와 놀았던 까닭에 우리 반 아이들과 다 친해졌다. 아직도 반창회를 하면 민재까지 껴서 할 정도다.


성인이 되고 다시 만난 고1 친구들 / 민재는 우리 반이 아니었다.


우리의 게임 사랑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멈출 줄을 몰랐는데, 아직까지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스페셜포스'라는 게임을 할 때다. 민재와 게임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어느 날엔 웃다가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의자에서 나자빠진 적도 있다. 가족들이 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미친놈 보듯 나를 쳐다봤다. 정말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에서 만큼은 늘 실력이 비등비등해서 몇 번의 갈등이 있었다. 결국 '프리스타일'이라는 농구 게임을 하다가 크게 다퉈 2년 정도 의절하게 된 것도 고1 때 즈음이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대입 소식까지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친구들이 강제로 화해를 시킨 덕에 관계를 다시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친했는데 그깟 게임 때문에 얼마나 서로 기분이 상했으면 2년 넘게 의절을 할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하고 웃음만 나온다. 아무튼 화해를 시켜준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을 전한다.


어느덧 아저씨가 된 우리


민재는 공부를 정말 잘해서 당시 공부를 제법 한다고 하는 대신고에서도 전교 1등을 할 정도였다. 진짜 대단한 녀석이었고, 여전히 대단하다. 민재는 하필이면 수능에서 조금 미끄러져 재수를 결심했는데 당시 입시에 워낙 변수가 많을 때라 운 좋게 꿈에 그리던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민재를 자주 볼 수 없다 보니 서로 조금은 소원해졌지만 지난날 우정의 결속이 워낙 강했기에 내 관계의 울타리 안에는 늘 민재가 있었다. 기껏해야 일 년에 두, 세 번 볼 때였지만 민재가 평생 내 곁을 지킬 것임은 여전히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함께 했던 것도 민재였다. 전역 기념으로 민재와 필리핀 보라카이에 다녀왔다. 해질 무렵 기막힌 노을을 배경으로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첨벙이던 우리의 지난날이 글을 쓰는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의 백사장을 거닐며 참 많은 대화를 했던 그날도. 아참, 500달러를 잃어버리고 해변가에 허탈하게 주저 앉아 낄낄 웃던 것도.


보라카이에서 민재와


민재는 한의대를 졸업한 뒤 몇 년 간의 보건의로 병역의 의무까지 마무리하고 지금은 천안의 한 한의원의 원장님이 되었다. 2020년에 개원한 민재의 한의원은 매년 매출을 갱신하며 성업 중이다. 그해 내 생일은 잊을 수 없는데 민재가 밥을 사준 날이었다. 당시 내가 지내던 원룸 앞에 도착했다는 민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는데 현관을 열자마자 으르렁 거리는 야수와 같은 자동차 배기음이 들렸다. 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민재였다. 민재 덕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포츠카를 타보는 호강까지 누렸다. 최고급 스테이크는 덤이었다.


내 생일에 포르쉐를 끌고온 민재 / 민재 덕분에 뚜껑이 열리는 차를 처음 타봤다.


민재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주 이성적이고, 냉철해졌다. 반대로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주 감성적이고, 흐물흐물한 사람이 되었다. 그탓에 민재는 언제부턴가 내게 선생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 삶에 이슈가 있을 때마다 민재는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민재의 조언은 늘 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한 때 같은 우주에서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완전히 다른 우주에서 살아감을 느끼지만 민재는 여전히 내 관계의 핵이다. 대화의 결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민재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 기다려진다. 내가 눈멀어 보지 못하는 영역을 민재는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이민재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큰 축복이다. 중학생 때 깊이 교류하면서도 느꼈던 감정인데 여태 이런 우정을 지속할 수 있음은 하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민재는 아픈 몸까지 이끌고와 내게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민재가 결혼한다. 조금 있으면 한 아이의 아빠가 될 것이다. 멈춰있을 줄 알았던 우리의 지난날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이토록 변했다. 삶의 변화가 놀랍기 그지없다. 12살에 시작된 우정, 우리는 지금 35살이다. 의절했던 2년을 빼고도 20년이 넘도록 가장 오랜 시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민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민재가 결혼하면 어떤 감정이 들까 궁금했는데 역시 생각보다 별 거 없다. 제수씨도 너무 훌륭한 분이라 두 사람의 핑크빛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끔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볼 때가 있는데 나는 몹쓸 병에 걸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을 하고, 민재가 가끔 들러 약을 지어주고 침을 놔주고 있다. 누군가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상상이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즐겁고 행복한 상상이다. 세상에 의사 친구를 둔 것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그것도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양의사가 아니라 한의사라니!


내 부모님까지 꼼꼼히 봐주는 내 친구 민재


글을 쓰다 보면 늘 마무리를 어찌할 줄 몰라 주저리주저리 헛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다.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우리는 늘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기에 둘 중 하나가 죽는 날까지 이 우정은 계속될 것이다. 민재를 친구로 둔 내 삶이 참 복되다. 내 뼈와 살과 같은 내 친구 민재의 결혼이 꼭 내가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기쁘다. 삶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아 앞으로 민재의 삶에도 크고 작은 풍파가 있을 터인데 그때마다 민재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 되고자 한다. 모쪼록 민재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며 민재를 향한 애정을 꾹 꾹 눌러 담은 일곱 글자로 이 글을 마친다. 사랑한다, 민재야.


가장 최근에 민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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