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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목 Oct 17. 2023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대화다운 대화를 할 때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라는 질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운동, 게임, 독서 등 각자의 취미를 놓고 이야기 나눌 때 나는 나 나름대로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운동을 하긴 하지만 즐겁지 않다. 게임을 정말 좋아하지만 컴퓨터를 끌 때 느껴지는 깊은 허무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즐거운 경험은 아니다. 나는 독서를 꾸역꾸역 해낼 뿐 절대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 나는 대화다운 대화를 할 때 가장 즐겁다.


신혼집으로 이사할 때 도움을 주신 부동산 중개인 부부께서 우리 부부를 좋게 보셨는지 한 달 전에 초대를 해주셨다. 감사했지만 당시에 너무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있어 답변을 재때 드리지 못했다. 그렇게 시절 인연으로 관계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얼마 전에 재차 연락이 와 또 초대를 해주시기에 더 이상 미루는 것은 결례라 생각되어 약속을 잡았다.


포도 한 상자를 들고 가정집에 방문했더니 두 분 내외는 막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아버님께서는 생삼겹살을 구워 먹기 좋은 크기로 정성스레 썰고 계셨고, 어머님께서는 된장찌개를 끓이신다며 부산히 움직이고 계셨다. 생전 처음으로 남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모든 광경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파트에는 작지만 아늑한 테라스가 있었고, 중개인 부부와 우리 부부가 같이 자리해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어머님께서는 남편분께서 누군가를 이렇게 초대하는 경우가 없는데 나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거듭 초대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아버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아버님의 안광이 막 숫돌에 갈려 예리해진 칼날과 같아 내색은 안 했지만 흠칫 놀랐다. 그렇게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아버님의 세계관이 놀라울 정도로 나의 그것과 비슷하여 서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혹자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괴상한 세계관을 고려하면 이 만남은 아주 특별해서 나는 실제로 보물을 찾은 느낌이었다. 아버님과 나의 세계관이 적잖이 비슷한 것을 고려하면 아버님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셨으리라. 


어머님 또한 비범하시어 두 분의 관계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머님께서는 젊어서 남자들을 우습게 여기실 정도로 현대적이고 깨어있으셨는데 아버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저 존경하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두 분의 잉꼬부부다운 면모는 집을 계약하기 전 두 분의 부동산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미 느낀 적이 있었다. 그날 갑자기 비가 내려 아버님께서 비에 조금 젖으신 채로 부동산에 들어오셨다. 어머님께서 아버님의 물기를 닦으며 살뜰히 챙기셨는데, 그 모습이 보기에 무척이나 좋았다. 두 분은 어찌 보면 정말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서로 다른 성격이신데 이토록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 참 놀라웠다. 금지옥엽과 같은 아들 하나를 슬하에 두시고 어느덧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드신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 해가 뜰 때까지 소주를 안주 삼아 대화를 들이켜고 싶었지만 한국말을 못 하는 아내를 배려하여 아쉽지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님께서 정성스레 구워주신 삼겹살은 태어나서 먹어본 삼겹살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고, 어머님께서는 가는 길 섭섭하지 않게 야무지게 만 김밥과 과일까지 챙겨주셔서 그저 부족할 것이 없는 완벽한 밤이었다. 하루 밤 사이에 우연히 펼쳐진 모든 일에 감사한 마음이 느껴져 황홀했고, 그대로 집으로 향하기가 못내 아쉬워 아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밤거리를 걸었다. 


나의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의 깊은 마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된 즐거움이 올라옴을 느낀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순간들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드물어진다는 것이다. 관계가 넓어지는 가운데 또 좁아진다. 어르신들의 오랜 말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폐부를 찌르는 요즘이다. 


재차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내 삶에 귀중한 손님이 되어주신 두 부부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을 전한다. 내 우주에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드는 인연을 만날 때마다 삶의 경의로움을 느낀다. 내 삶에는 왜 이렇게 좋은 향기를 가진 분들이 많이 찾아드는지 나로서는 그것이 참 궁금하다. 나는 아둔하여 먼저 다가가지 못해 늘 머뭇거리는데 늘 먼저 다가와 그 따듯한 손을 내미는 인연들... 덕분에 내 삶이 꽃향기로 가득하다. 빠른 시일 내에 부부를 우리 집으로 모셔서 감사한 마음 보답해 드리고 지난 만남에서의 아쉬움을 달래야지. 맛있는 대화! 벌써부터 마음이 즐거움으로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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