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그리고 진보단체의 변화 방향
제가 조합원이 된 건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다음날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전교조 선배님들과 교류가 있었지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법외노조까지 된 상황이니 사람 수 하나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입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에 대해서 최소한은 알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개월간 상경투나 참실대회 등 여러 곳에 참석하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청년이 주인공으로 서지는 못하더군요. 청년은 전교조에도 젊은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는 전시품이나 잡일을 하는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그 모습에 크게 실망하여 더 이상 어디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지난 2월부터 갑자기 지회장이 되었습니다. 지회장 역할을 하며 바라본 전교조는 전혀 다른 조직이었습니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계 어디에나 전교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과의 단단한 연대도 인상 깊었습니다. 지방선거 과정과 결과도 놀라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선배 조합원들의 참교육을 향한 신념은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교조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니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전교조는 그동안 수많은 싸움을 해나갔습니다. 독재정권과 관료 집단, 신자유주의 사상 등 거대한 것부터 관리자의 갑질, 촌지 문화 등 미시적인 것까지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 닮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교육부를 떠올려보면 꽤나 닮은 점이 많습니다. 교육부가 학교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내리는 것처럼 전교조의 정책은 분회 현장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분회와 지회의 가치나 비전을 세우기보다는 위에서 내려온 정책을 수동적으로 집행하게 합니다. 각종 행사 참여를 강제하고 지부, 지회별로 참여인원을 배당합니다.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환경을 조성하기보다는 잡무로 헐레벌떡 움직이게 만드는 것처럼 활동가들이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게 만듭니다. 교사가 수업 외 업무로 소진되어 무기력해지는 것처럼 활동가들도 그렇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건 교사를 교육개혁의 주체로 보지 않고 개혁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처럼 조합원을 이끌어야 할, 참여시켜야 할, 교육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어느새 전교조가 그렇게 비판하던 교육부를 닮게 된 꼴이지요. 제가 처음에 바라본 청년들의 모습이, 신규 조합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그 결과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교조가 계선조직 형태를 띤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결성 시기부터 꽤 긴 시간 그게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도 효과적인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는 적어도 교사들과는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에게 명확한 적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사를 가장 괴롭히는 건 현 정부도 아니고 특정한 교육정책도 아닙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함입니다. 혁신학교가 여기저기 꽃 피웠지만 여전히 다수의 교사들은 틀에 맞춘 수업을 합니다. 수능이나 평가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학생을 대하기에도 조심스럽고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교사에게 상처 받기도 합니다. 사회의 요구가 많아져 학교는 점점 바빠집니다. 교사에게 유일한 낙은 때 되면 들어오는 월급과 퇴근 이후의 삶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점을 타개하거나 돌파함으로써 교육을 개선하고 조직을 강화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찌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교사들을 춤추게 하면 됩니다. 학교에 나오는 것이, 교육을 고민하는 것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이 즐거워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면 됩니다. 그게 어려운 거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만들어낸 곳에 답이 있습니다.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전교조를 혁신학교처럼 운영하면 됩니다.
혁신학교의 기본은 교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존 정책과 사업을 분석해 비워낼 걸 골라냅니다. 그리고 비워낸 자리에 상상과 만남을 더합니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새로운 교육을 꿈꾸게 하고,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합니다. 각자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서로를 연결시킵니다. 그럴 때 구성원들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느낌과 개인을 넘어 더 큰 무엇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그때 구성원들에게는 무기력에서 회복하게 됩니다. 전교조 운영도 혁신학교처럼 한다면 조합원들, 나아가 예비 조합원인 모든 교직원을 춤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전교조는 조합원이 교육을 비롯하여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또는 관심이 가는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작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공동체들은 경우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자유로운 결사체입니다. 여러 공동체들이 만들어내는 확장성과 단단함은 조합원의 확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부는 정부와 교육청을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정부와 교육청이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은 서명지의 숫자가 아니라 조합원의 수와 그 다수가 시민들과 강하게 연결된 것입니다. 전교조가 플랫폼이 될 때, 수많은 교직원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함께 꿈꾸고 살아갈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몰려들 것입니다.
어느덧 전교조가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전교조가 만들어낸 유산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안에서 빛나는 지혜를 발견할 때 우리는 새로운 전교조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중심이자 함께 더 큰 하나가 되는 전교조가 되길 바랍니다.